[역경의 열매] 임만호 (5) 훈련소 입소 첫 주일, 예배 다녀왔더니 탈영소동이
입력 2013-12-31 02:30
금요일에 입대했는데 월요일부터 본격적인 제식훈련을 한다고 했다. 토요일에는 훈련복과 소총, 필요한 장비를 받아 정리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총을 받으니 신기하면서도 ‘이제 진짜 군인이 됐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첫 주일 아침 영내 군인 교회에서 예배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주님이 부르시는 음성처럼 반가웠다. 그러나 교회에 갈 엄두는 내지 못했다. 마침 내무반장이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함평 궁산교회를 다니던 나태식에게 말없이 교회에 빨리 다녀오자고 했다. 예배당에 들어서니 100여명의 선배 기수들과 기관병들이 가득 찼고 찬송과 기도가 우렁찼다. 설교 시간엔 눈물바다가 됐다.
예배를 마치고 부지런히 뛰어서 내무반에 돌아왔다. 그러나 내무반에선 우리가 탈영을 했다고 난리가 난 상황이었다. 내무반장이 소리쳤다. “너희를 탈영병으로 보고했다. 이제 영창으로 보내겠다. 엎드려뻗쳐!” 명령과 동시에 야전용 곡괭이 자루가 날아왔다. 주먹으로 뺨도 맞았다. “또 이 따위 짓 할 거냐.” “네.” “이 자식들, 교회에 말없이 갈 거냐고?” 우리는 작은 소리로 “네” 하고 대답했다. 입대 전에도 교회에 다녔느냐고 묻기에 또 “네”라고 대답했다. “이 새끼들, 진짜 예수쟁이구먼. 알았어.”
저녁예배 시간이 됐다. 군종병이 찾아왔다. 내무반장이 “예수쟁이 두 놈 말고도 교회 갈 사람 또 있어?”라고 했다. 그랬더니 7명이 따라 나섰다. 내무반장은 나태식과 나에게 인솔자가 되라고 명령했다. 그렇게 교육이 끝날 때까지 예배생활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신병훈련을 마치고 강원도 원주 1군 사령부 통신교육대에서 6주간 무전병 훈련을 받았다. ‘이왕 군 생활을 하려면 전방에서 하는 게 맞다’는 생각에 교육대 행정실을 찾아가 최전방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지만 욕만 얻어먹었다. “후방으로 가겠다고 찾아오는 놈은 있었지만 전방으로 가겠다는 놈은 처음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대기하고 있어!”
대구 보충대에서 1주일을 머문 다음 고향이 가까운 전주 35사단 103연대로 전속 명령을 받고 인사과에 배속됐다. 마침 35사단 교회가 부대 근처에 있어 주일예배는 물론 수요예배까지도 출석할 수 있었다. 주일예배는 군목이 집례했지만 수요예배는 많이 모이지 않아 사병들이 돌아가며 설교를 했다. 인사과에 근무하는 나는 부대원들의 신상카드를 정리하는 일도 했다. 카드 정리할 때 기독교인들을 파악했고 이들을 중대별로 정리해 중대 신자들 중에 나름대로 책임자를 뽑아 주일예배와 수요예배에 참석하도록 권했다. 그랬더니 예배 참석자 수가 날로 늘어났다. 처음엔 50명 정도였지만 금세 120명을 훌쩍 넘어섰다. 신우회와 성가대도 조직해 교회의 면모를 갖추는 데 힘을 썼다. 나는 상병 말기부터 신우회 회장직을 맡았다.
하루는 군종 목사님께서 연대장을 찾아왔다. “임만호 병장이 주간에는 인사과에 근무하고 일과 후에는 교회에서 지내며 신우회를 도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연대장은 불신자였지만 흔쾌히 승낙했고 그날부터 나는 반(半)군종병처럼 일과 후에는 교회로 퇴근해서 사병들의 신앙상담을 도왔다. 제대할 때까지 군종 목사님을 도우며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은혜였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