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올바른 철도 해법이 공기관 개혁 시금석 된다

입력 2013-12-31 01:47

기존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사회적 대타협 도출할 수 있어

철도파업이 마침내 끝났다. 사상 최장의 철도파업은 우리 사회의 일방적인 의사결정 구조와 투쟁 일변도의 후진적 노사문화가 빚어낸 ‘한국병’의 전형을 보여줬다.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생략한 채 국민생활과 밀접한 철도회사 분할을 밀어붙인 정부의 불통과 기득권 고수를 위해 힘으로 정부 결정을 뒤집으려는 철도노조의 ‘떼법’이 맞부딪쳐 발생한 불상사가 이번 파업이다.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위한 힘겨루기였는지 선뜻 납득이 안 된다. 그나마 해가 바뀌기 전에 마무리돼 새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게 됐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정치권의 역할이 컸다. 19대 국회 출범 이래 사사건건 충돌만 했던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실로 오랜만에 ‘정치는 이런 것’이라는 걸 보여줬다. 양당 중진 의원들이 수배 중인 철도노조 위원장을 만나 파업을 끝내기 위한 절충안을 도출하고, 다시 청와대와 당의 승인을 이끌어내는 과정은 절망적인 우리 정치에 그래도 한가닥 희망을 걸게 한다. 사회의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게 정치다. 그러나 우리 정치권엔 너무 오랜 세월 정치가 없었다. 앞으로 철도파업 해결 과정에서 보여준 정치력을 발휘한다면 어떤 정치적 난제도 풀 수 있다.

파업은 끝났지만 사실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다. 장기 파업에 부담을 느낀 노사정(勞使政)이 파업의 불씨가 됐던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을 비롯한 본질적 문제들을 국회에서 논의키로 하는 조건으로 파업 중단에 합의한 까닭이다. 투쟁 무대가 장외에서 여야 동수로 구성되는 국회 철도발전소위로 바뀌어 2라운드가 시작되는 것에 불과하다. 여야와 국토교통부, 철도공사, 철도노조, 민간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정책자문협의체도 구성키로 함으로써 사회적 대타협을 위한 토대는 마련됐다. 어렵게 성사된 논의체이니 만큼 반드시 최상의 철도발전 방안을 만들어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한다.

노사정 모두 기존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철도노조는 KTX 자회사 설립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현실성 없는 민영화 비판 시도를 접어야 한다. 정부가 이미 민영화를 하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선언한 마당에 계속 민영화 타령만 하는 건 명분이 없을 뿐더러 국민의 동의를 받기도 어렵다. 노조도 이런 이유로 민주당에 중재를 요청한 게 아닌가. 철도 경쟁체제 도입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불가피하다면 신설 회사와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마련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는 게 옳다.

수서발 KTX 노선은 상당한 흑자가 예상되는 알짜 노선이다. 황금 노선만 관할하는 회사와 구조적으로 적자일 수밖에 없는 노선도 떠안고 있는 코레일을 경쟁시키겠다는 정부 방침은 출발이 잘못됐다. 정부는 자회사 설립의 목적이 코레일의 경영 합리화에 있다고 했다. 그러나 수서발 자회사 설립은 코레일의 적자 구조를 더욱 고착화시킬 뿐이다. 여당 내에서조차 불공정 경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공정해야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시너지 효과가 생기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