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엔저·원고 추세 뛰어넘자면 기술력 향상뿐

입력 2013-12-31 01:37

엔저·원고 추세가 한층 더 심화되고 있다. 30일 서울 외환시장에서는 한때 100엔당 1000원선이 붕괴됐다. 5년 3개월 만에 1000원선을 밑돌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원·엔 환율은 바로 1000원선을 회복한 채 이날 장을 마감했으나 엔저·원고 추세는 돌이키기 어렵다. 이제 엔저·원고 추세는 변수가 아닌 상수(常數)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원·엔 환율은 원·달러 및 엔·달러 환율의 동향에 의해 결정된다. 원화와 엔화의 교환은 직접 이뤄지지 않고 달러를 매개 삼아 간접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양적완화(QE) 축소 결정을 한 이래 엔·달러 환율은 뚜렷한 상승세(엔저 추세)를 타고 지난주 말 1달러당 105엔대를 웃돌기 시작했다. 새해 1월부터 QE 축소가 구체화되면 달러는 귀해질 것이고 일본은행은 금융완화를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고 있어 엔저는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게다가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3%대를 돌파하면서 달러 강세 추세는 한결 더 강화될 것이 자명하다. 여기에 일본의 장기금리는 0.7%에 머물러 있어 이 같은 양국간 장기금리 격차는 엔 매도와 달러 매수를 부추기면서 엔·달러 환율 상승세가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미 경제전문채널 CNBC는 내년 말까지 엔·달러 환율은 125엔까지 상승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반면 원·달러 환율은 현재 1달러 당 1050원 안팎으로 오르내리기를 거듭하고 있으나 경향적 하락세(원고 추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엔을 비롯한 다른 통화에 대한 달러 강세는 분명하게 확인되고 있지만 한국경제는 올해 사상 최대의 무역수지 및 경상수지 흑자를 시현함으로써 원화의 강세 추세는 달러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새해 들어 엔저가 더욱 가속화되면 무역·경상수지 측면에서 호조를 보여온 한국경제에 적잖은 타격을 안길 것이다. 엔저에 따른 수출기업의 수익성 감소와 가격경쟁력 악화 탓이다. 당장 전년 동월 대비 대(對)일본 수출은 올 1월부터 11개월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가격경쟁력 하락을 대체할 수 있는 첨단기술 확보와 그에 입각한 신상품 개발 없이는 엔저·원고 구도를 뛰어넘을 수 없다.

물론 세부 교역내역을 보면 올 한국의 부품소재 부문 흑자 규모는 1000억 달러에 육박한다. 그만큼 기술적으로 약진해 왔다고 하겠다. 하지만 수출 부품소재의 대부분이 범용임을 감안하면 허술한 측면이 적지 않다. 가격경쟁력에 밀리고 게다가 치고 올라오는 중국산 부품소재까지 감안하면 한국산의 설 자리는 더욱 줄어들 것이다. 기술력 향상을 한국경제의 도약, 엔저·원고 구도의 극복 등을 위한 최상의 가치로 앞세우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