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김의구] 올해 같지 않은 내년을
입력 2013-12-31 01:32
연초 새 정부 출범이 삐걱거리더니 세밑까지도 온 나라가 시끄럽다. 새해 예산안과 각종 법안 처리에 국가정보원 개혁 문제까지 뒤얽혀 여야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예산안이 해를 넘기면 비판여론이 워낙 거세 올해도 정치권은 어떻게든 해법을 찾긴 할 것이다. 그렇다고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다. 국회의 역할, 정치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그간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처리한 예산과 법률 어디서 어떤 구멍이 발견될지도 안심할 수 없다.
국정 이끄는 진정한 힘은 소통
한 해 내내 국민을 불편하게 만든 책임은 여야 모두에 있다. 철도 파업이 막판에 가닥을 잡은 데 모처럼 한몫했다지만 정치는 올해도 사회 갈등을 조정하기보다 조장하고 증폭시키는 역할을 해 왔다. 광우병 파동으로 국정 주도력을 상실했던 이명박정부에 이은 박근혜정부의 순탄치 않은 출범 첫해는 잘못된 정치 행태가 관행으로 굳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갖게 한다. 의욕에 차 참신한 국가비전들을 실천에 옮겨야 할 새내기 정부가 흔들리는 건 국가 미래의 싹을 말리는 일로 국민 전체의 불행이다.
근본적인 책임은 당연히 여권에 있다. 정권이 자기 사람들을 갖다 쓰는 것을 뭐라 할 수는 없지만 국정을 이끌 인사들을 선택하는 데는 국민의 기대치를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한다. 대선 이후 갈수록 증폭됐던 국가정보원의 대선 및 정치 개입 의혹에 대한 원칙적 대응도 옹색하고 미흡했다. 비록 유죄 판결이 내려지지 않았더라도 숱한 사실관계들이 드러났다면 국민의 우려를 불식할 방안을 내놓아야 마땅했다. “국가기관들이 정치에 개입했다니 많이 놀라셨죠? 저희도 많이 놀랐습니다.” 최소한 TV 개그 프로에 나오는 정도의 눈높이 맞추기는 있어야 했다.
원칙이 바로 서고 법이 지켜지는 나라는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기본 덕목임에 틀림없다. 법과 질서가 무시되면 ‘떼법’과 집단이기주의에 휩쓸려 사회가 표류하게 된다. 하지만 법치가 올바른 사회를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법질서 준수를 강조하는 것만으로 사회를 통솔해 나갈 수는 없다. 국민을 이끌어가는 진정한 힘은 소통에서 나온다.
군사력을 동원해 이기는 것은 병법에서 하책이다. 상책은 지혜를 발휘해 다치지 않게 적을 선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다. 최상책은 사회 구성원들이 원활한 소통 과정을 통해 깊은 적대관계에 애초 빠지지 않도록 하는 일일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다니 국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좋은 자리가 돼야 할 것이다. 여당도 반대편을 설득하고 포용하려는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야권도 ‘유신 상술’ 그만 써야
대통령과 정부, 여당을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악습에서 벗어나는 것은 야당의 몫이다. 국민의 선택을 존중하고 국정에 협조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스스로를 위한 원려(遠慮)다. 국민의 지지를 구해 차기를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정을 건건이 비토만 하는 것은 국민과 정치를 이간하는 나쁜 습관이다. 특히 ‘유신 상술(商術)’은 금기다. 40년 케케묵은 망령을 끄집어내 현재에 갖다 붙이고 현직 대통령의 가계를 싸잡아 공격하는 것은 얄팍한 짓이다. 쓸데없이 갈등을 증폭시키고 감정의 골만 깊게 할 뿐 건설적인 문제 해결법이 아니다. 그저 정치에 대한 신뢰의 둑을 무너뜨릴 뿐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라던 시인의 노래처럼 정치권이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해” 국민들에게 꿈을 되돌려 주기를 기대한다.
김의구 편집국 부국장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