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성희] 예의와 도리가 사라진 세상

입력 2013-12-31 01:32


20대 초반 여성 연예인이 페이스북에 철도노조 파업과 관련한 글을 올리면서 대통령에 대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써서 논란을 빚었다. 파장이 커지자 삭제하고 사과했다지만 글은 이미 퍼질 대로 퍼진 뒤였다. 젊은 연예인의 치기 어린 막말 소동으로 치부하기엔 그 내용이 너무 참담하다.

이번 일은 개인적 사태를 넘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몇 가지 문제를 그대로 드러낸다. 막말이 도를 넘었다는 것, 상대가 누구든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와 도리조차 무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소통이 아닌 사적인 감정 배출구쯤으로 여기는 이들이 흔하다는 게 그것이다.

막말 세상이 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비속어는 물론 초등학생의 60%, 중·고생의 80%가 욕설과 협박도 해봤다고 답했다는 국립국어원의 조사 결과를 들먹일 것도 없다. 험한 말투보다 더 끔찍한 건 내용이다.

남녀 학생 모두 누군가의 외모와 능력을 비하하는 걸 넘어 바로 옆에 있는 상대의 약점을 놀린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 그러니까 혹은 힘 과시나 존재감 입증 때문이란 것이다.

아이들만 탓할 것도 없다. 정치인들의 막말 역시 기막히긴 마찬가지다. 세상의 지탄은 잠깐이요 검색어 1위가 만드는 지명도는 영원하다고 믿는 걸까. 술자리에서도 삼가야 할 막말로 정치권에서 퇴출된 이들이 있는데도 정치인의 막말은 줄어들 줄 모른다.

말은 힘이 세다. 상대를 무시, 비난, 조롱, 협박하는 말은 더하다. 언어는 ‘장전된 무기’라고 하거니와 일단 흉기로 변하면 두고두고 상대는 물론 자신의 가슴까지 후벼파고 도려낸다. 사라지지도 않는다. 부모가 홧김에 한 욕설을 수십년 동안 가슴에 두는 자식이 허다하고, 부부싸움 중 무심코 뱉은 말 때문에 평생 시달리는 남편도 부지기수다. 친한 친구가 농담처럼 던진 비아냥에 칼부림이 나는 일도 적지 않다. 어떤 경우에도 할 말과 하지 않아야 할 말을 구분해야 하는 이유다.

누구나 정치 사회적 현안에 대해 언급할 수 있다. 문제는 방법이다. 비판에도 예의와 도리는 있어야 한다. 연예인은 나이에 상관없이 우리 사회에서 공인대우를 받는다. 공인 대우를 받는 사람이라면 공인으로서의 자세와 규범을 갖춰야 한다.

언니라는 말이 아무리 촌수나 나이에 상관없이 쓰인다고 해도 현직 대통령에게 ‘언니 운운’하는 건 도리가 아니다. 하물며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까지. 순간 감정이었다지만 갑자기 튀어나오는 말에도 격이란 게 있다. 누구라도 마찬가지지만 20대 초반 여성에게서 “몸을 팔라”는 말이 나왔다는 사실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는 더 이상 사적인 공간이 아니다. 보내는 사람의 의도가 뭐든 받는 사람에겐 미디어가 된 지 오래다. 일단 올리고 나면 자신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다.

조선시대 실학자 이덕무(1741∼1793)는 예절에 관한 책 ‘사소절(士小節)’ 언어(言語)편에 이렇게 적었다. “저속한 말을 입 밖으로 내지 마라. 다른 사람을 ‘이놈’ 혹은 ‘저놈’이라고 하거나 ‘이 물건’ ‘저 물건’이라고 부르지 마라. 경솔하고 천박한 말이 입에서 튀어나오려고 하면 재빨리 마음을 짓눌러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일단 입 밖으로 내뱉고 나면 다른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하고 해로움이 따르게 될 텐데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 모두 깊이 새겨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박성희 한국간행물 윤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