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투자자 보호” 2014년부터 회사채 공시 대폭 강화
입력 2013-12-30 01:35
내년부터 회사채를 발행하는 기업들은 투자자들에게 내건 약속을 공시 형태로 금융당국과 투자자들에게 재천명해야 한다. 금융당국이 회사채 발행 기업의 부채비율, 자산매각 한도 등 ‘회사채 개별특약(Covenant·커버넌트)’ 공시를 강화토록 지도한 것이다. 기업들은 회사채 관리를 맡긴 증권사 등 사채관리회사에 대해서도 담당자의 연락처를 공개하는 등 투자자에게 더 많은 정보를 제시하게 됐다.
금융감독원은 기업공시서식 개정안을 확정, 최근 기업들에 통보했다고 29일 밝혔다. 이에 따라 회사채를 발행하는 기업들은 당장 다음 달 2일부터 회사채 발행 관련 공시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 회사채 투자를 고려하는 투자자들이 발행 기업의 재무상태가 과연 안정적인지를 수월하게 파악하게 하려는 취지다. 금감원 관계자는 “증권신고서를 참고하는 것만으로도 동양사태에서 나타난 것처럼 어처구니없는 투자 손실을 피하게 하려는 목적의 회사채 투자자 보호 방안”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이 투자자 보호를 위해 우선 주력한 부분은 회사채 커버넌트 공시 강화다. 회사채 커버넌트란 부채비율 제한, 담보권 설정한도, 자산매각 한도, 주주 배당 한도 등 발행회사가 투자자와 지키기로 한 경영 계약사항을 말한다. 개정된 기업공시 서식에 따르면 기업들은 증권신고서에서 회사채 커버넌트를 항목별 표의 형태로 올려야 한다.
그간 기업들은 복잡한 회사채 커버넌트에 대해 핵심적인 내용을 빠뜨리고 부분적으로만 제시하거나, 공개하더라도 첨부서류 형태로 올려두는 등 공시 형식이 뒤죽박죽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회사채 투자자들은 공통된 표의 숫자들을 참고·비교할 수 있어 보다 큰 도움을 얻을 전망이다. 예를 들어 회사채를 발행하는 기업이 유·무형자산을 크게 처분할 수 있다는 내용의 단서를 달아 뒀거나, 동일업종 경쟁사보다 부채비율 한도를 높이 형성해 뒀다면 투자자들로서는 판단을 재고할 수 있는 셈이다.
한국예탁결제원과 한국증권금융, 각 증권사 등 회사채 업무를 수탁 처리하는 사채관리회사 관련 공시 의무도 강화됐다. 회사채 발행 기업과 사채관리회사의 거래관계, 관리 실적 등은 물론 해당 조직과 담당자의 연락처까지 증권신고서에 공개토록 한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기업의 디폴트(채무불이행) 등 유사 시 투자자들의 대처를 용이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채관리회사가 투자자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할 경우를 증권신고서 말미에 명시토록 한 것도 특징이다.
금감원은 이 외에도 그간 기업마다 불명확했던 각종 공시 내용을 명확한 형태로 다잡았다. 채무증권 발행 실적의 작성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정확한 사업보고서를 쓰도록 했다. 우발채무(장래에 우발적인 사태가 발생할 경우 확정채무가 되는 특수한 성질의 채무) 분야에서는 연결실체(각종 재무제표에서 연결돼 있는 기업집단) 내 계열사 간의 거래내역을 모두 기재토록 보완했다. 또 단기매매차익 발생·환수 현황을 기재하는 표가 신설됐고, 기한의 이익 상실(채무자에게 빌려준 대출금을 만기 전에 회수하는 것)에 관한 사항 공시가 세분화됐다.
금감원은 애초 회사채 커버넌트마다 ‘부채비율은 1000% 미만이어야 한다’는 등 구체적인 숫자를 동반한 직접 규제를 검토했지만, 회사채 시장이 극도로 부진해지자 공시를 통한 간접 규제로 방향을 틀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개정된 공시서식 기준이 자리를 잡으면 투자자 보호 효과도 서서히 드러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