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정신이 무기” 불사조 뜨는 곳마다 돌풍… 국군체육부대 맹활약
입력 2013-12-30 01:27
“군대에 와 보니 팬들의 박수와 함성을 받으며 경기를 한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깨닫게 됐습니다. 건강하게 제대해서 팬들에게 좋은 플레이를 보여 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충성!”
그들은 운동하는 군인이다. 소속은 ‘상무(尙武)’로 통하는 국군체육부대다. 선수들은 이곳에서 병역 의무를 이행하면서 운동을 계속한다. 현재 국군체육부대엔 28개 종목에 400여명의 선수들이 생활하고 있다.
군국체육부대는 시간을 허비하고 꿈을 빼앗기는 곳이 아니다. 어떤 선수들은 기량을 키워 제대 후 전성기를 맞기도 한다. 프로, 아마추어, 실업 팀들과 당당히 기량을 겨루고 있는 국군체육부대 소속 3개 팀의 활약상을 살펴봤다.
◇축구 ‘다시 1부 리그로’=상주 상무 프로축구단은 K리그 역사상 ‘최초 클래식 승격’이라는 꿈을 이뤘다. 지난해 9월 상주 상무는 아시아 축구연맹(AFC) 클럽 라이선스 요건을 갖추지 못해 K리그 챌린지(2부 리그)로 강제 강등됐다. 그러자 국방부는 정원을 줄이고 아마추어 대회에만 출전시키겠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결국 구단과 한국프로축구연맹은 국방부를 설득한 끝에 상무가 2013 시즌 챌린지(2부 리그)에서 새출발을 하기로 합의했다.
국방부는 상주 상무에 1년 뒤 무조건 K리그 클래식(1부 리그)에 복귀해 군인의 자존심을 회복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상주는 올 시즌 개막 전부터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다. 탄탄한 기존 멤버에 지난해 12월 입대한 이근호, 김동찬, 이승현 등 전·현직 국가대표들이 가세하면서 클래식 팀 못지않은 전력을 갖춘 것.
박항서 상주 상무 감독은 지난 1월 제주 전지훈련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좋은 멤버를 갖춘 선수단을 운영한 것은 처음이다. 1부 리그 재입성을 노려볼 만하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상무는 올 시즌 초반 예상 외로 부진에 빠지며 선두 경찰축구단과의 승점 차가 9점까지 벌어졌다. 더욱이 6월말엔 박 감독이 심판 판정에 항의하다 5경기 출전정지 중징계를 받으며 선수단 전체가 흔들렸다. 그러나 박 감독이 벤치에 복귀한 9월을 기점으로 연승 행진을 이어갔다.
상승세 원동력은 선수들의 희생정신이었다. 입대 전 소속 팀에서 주전으로 뛰던 선수들은 시즌 중반까지 팀플레이에 녹아들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개인플레이를 자제했고, 상무는 폭주기관차처럼 질주했다.
선수들은 1위에 오른 뒤에도 방심하지 않고 매 경기 최선을 다해 역대 K리그 최다인 11연승을 기록하며 챌린지 우승을 확정지었다. 이어 강원 FC와의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1, 2차전 합계 4대 2를 기록,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했다. 선수들은 1부 리그 승격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19일부터 29일까지 특별휴가를 받았다.
상주 상무는 내년 목표를 1부 리그 10위로 잡았다. 이를 위해 내년 1∼2월 경남 남해와 부산 기장군에서 겨울훈련을 할 계획이다. 박 감독은 “1부 리그에서도 통하는 상주 상무를 보여 주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농구 ‘아마추어 강자로 군림’=상무 농구단은 지난 5일 열린 2013 KB국민은행 농구대잔치 남자부 결승에서 연세대를 71대 67로 꺾고 2년 만에 정상을 탈환했다. 2001∼2002 시즌과 2005 시즌 우승하고 2008 시즌부터 4연패를 달성한 상무는 이날 승리로 역대 7번째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프로농구 출범 이전 최강으로 군림한 기아자동차와 우승 횟수에서 동률을 이뤘다.
상무는 1990년대 중반 기아자동차와 실업 양강 체제를 형성했다. 양 팀은 대학 양강이던 연세대, 고려대와 농구대잔치 ‘빅4’였다. 상무 농구단은 1995년부터 1997년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당시 팀엔 특급 가드 이상민(삼성 코치)과 문경은(SK 감독), 조동기(하나외환 감독), 김승기(KT 코치) 등 농구대잔치 세대 스타들이 총집결했다.
1997년 프로농구가 출범하자 상무는 아마추어 무대로 전락한 농구대잔치를 휩쓸었다. 이어 2012년엔 프로-아마 최강전에서 정상에 오르며 아마추어의 자존심을 세웠다.
상무는 평소에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다. 프로 팀들과 달리 고정 팬들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막강 전력으로 한국 아마추어 농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써 내려가고 있다.
◇아이스하키 ‘빙판 위의 돌풍’=한국 아이스하키의 숙원 중 하나는 상무 팀 창단이었다. 선수들은 병역 의무를 위해 약 2년 동안 빙판을 떠나야 했다. 이 때문에 조기 은퇴하는 선수가 속출했고, 복귀하더라도 예전의 기량을 회복하기 힘들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대비하는 국가 대표팀도 최상의 전력을 구축하기 어려웠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대명 상무 아이스하키팀이 지난해 11월 창단됐다.
대명 상무의 엔트리는 17명에 불과하다. 실업팀에 비해 선수 자원이 부족한 데다 외국인 선수도 기용할 수 없다. 객관적인 전력으로만 보면 열세지만 대명 상무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리고 있다. 17명 선수 전원이 대표팀 경력을 지니고 있는 ‘소수정예부대’이기 때문이다. 지난 4월 헝가리 세계대회 디비전1 A그룹 잔류를 이끈 대표팀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아이스하키의 경우 잦은 선수 교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골리(골키퍼)를 제외한 5명의 선수는 1∼2분만 뛰면 체력이 소진되기 때문이다. 통상 5명씩 구성된 4개의 조가 교대로 투입되지만 대명 상무는 선수가 부족해 2∼3개 조로 경기를 치른다. 하지만 선수들은 “힘들지만 아이스하키를 계속 할 수 있는 게 어디냐”며 웃는다.
대명 상무는 이번 시즌 한·중·일 실업팀 대결인 아시아리그에 참가 중이다. 고작 17명으로 뭘 하겠느냐며 비웃던 아시아 팀들은 깜짝 놀라고 있다. 대명 상무는 27일 현재 승점 48점을 따내 8개 팀 중 3위에 올라 있다.
대명 상무는 지난 2일 서울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제68회 전국아이스하키 종합선수권대회에서 ‘디펜딩 챔피언’ 하이원을 4대 2로 꺾고 정상에 올랐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끝나면 상무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선수들은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잘해야 한다”며 “평창 동계올림픽에 아이스하키가 자력으로 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다지고 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