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돕는 기쁨-Helper’s High] “전세계 어린이들에 꿈 줄 수있어 뿌듯”

입력 2013-12-30 01:33


일러스트레이션 재능기부 홍원표·박정인 작가

홍원표씨와 박정인씨는 마흔 살 동갑내기 미술가다. 책과 광고, 영상에 쓰이는 일러스트레이션(삽화)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다. 두 동갑내기의 또 다른 공통점은 국제구호개발 NGO 굿네이버스에 자신들의 작품을 기부하면서 헬퍼스 하이를 경험하고 있다. 이들을 지난 23일 서울 청파동 굿네이버스 사무실에서 만났다.

“5∼6년 전 어느 출판사의 송년회 모임에서 정인씨를 처음 만났는데 너무 친절한 거예요. 자기도 바쁜데 동료들 전시회 있으면 꼭 와서 사진 찍어주고, 자주 연락해주고. 그림도 참 따뜻해요. 그래서 다들 좋아하죠.”

홍 작가는 앉자마자 박 작가를 칭찬했다. 조금 늦게 도착한 박 작가도 지난봄 프랑스 파리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고 치켜세웠다.

“사진 찍으러 유럽에 갔는데 공항에서 유레일 티켓과 돈이 든 지갑을 잃어버렸어요. 게다가 비행기 안에서 체하고 장염까지 걸렸죠. 다행히 첫 도착지인 파리에 홍 작가님이 스튜디오를 얻어 머물고 계셔서 큰 신세를 졌어요. 파리가 아니었으면 완전 ‘멘붕’ 왔을 거예요.”

굿네이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일은 박 작가가 먼저 시작했다. 2006년부터 굿네이버스의 소식지와 홈페이지 등에 쓰이는 그림을 기부했다.

“아는 분이 추천해서 굿네이버스에서 먼저 연락을 주셨죠. 저도 좋은 일을 하고 싶었는데, 그림으로 하는 일이라 흔쾌히 수락했죠. 소식지에 들어가는 작은 삽화부터 엽서, 홈페이지에 들어가는 이미지까지 다양하게 그렸어요.”(박)

“우와, 벌써 8년째네. 공로상 줘야겠다(웃음). 저는 결혼도 했고. 아이들도 있고…. 먹고 사느라 바쁘게 살아왔어요. 그러다 무언가 허전함을 느끼고 있을 때 이 친구를 통해 굿네이버스를 추천받았어요. 이 친구가 좋은 곳이라고 하니까, 제가 먼저 굿네이버스에 연락했죠. 2010년이었어요.”(홍)

그림 그리고 사진 찍어서 생활하는 작가인데, 공짜로 작품을 준다? 재능기부가 확산되고 있지만 ‘공짜로 준다’는 생각에 기부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소홀히 대하는 사례도 있다. 두 작가는 그런 경험이 없을까.

“굿네이버스에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부탁하시고, 저도 정말 바쁠 땐 다른 동료를 추천해주기도 하면서 서로 기분 좋게 해올 수 있었어요. 덕분에 TV 뉴스에도 나왔어요. ‘외국에선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도 기부를 많이 한다, 한국에는 저처럼 재능기부하는 사람도 있다’는 뉴스였죠. 그땐 턱선이 살아있어서 화면이 잘 나왔는데.”(박)

“와, 스티브 잡스와 동급! 저는 사실 돈에 민감한 사람이거든요. 그래도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은, 개인시간을 조금만 줄이면 어려운 아이들에게 잠깐이라도 ‘귀엽다’ ‘재밌다’ 이런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에요. 제가 굿네이버스를 위해 그린 그림을 제 아이가 유치원에서 가져왔을 때는 뿌듯했죠.”(홍)

“돈을 받고 하는 일이든, 재능기부로 하는 일이든 같은 정성이 들어가요. 대충하면 그림을 보는 분들이 알아요. 그래선 안 되죠. 굿네이버스에 그리는 그림은 정말 다양한 분들이 보시잖아요. 아이들이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고, 후원자들이 마음을 여실 수도 있으니 더 신경을 쓰게 됩니다.”(박)

“맞아요. 제 그림이 실린 소식지를 받아 보신 분들이 잠깐이라도 ‘그림 참 예쁜데’ 정도라도 느껴주신다면 만족해요. 그래서 굿네이버스에 그리는 그림은 최대한 귀엽고 재밌게 하려고 해요.”(홍)

두 작가 모두 어린이를 위한 책과 그림책, 광고 등을 위한 작업으로 늘 바쁜, ‘잘 나가는’ 작가들이다. 그런데도 왜 없는 시간을 쪼개가면서 자기 작품을 공짜로 내놓는 걸까.

“제 재능을 나누기 위해 그릴 때는 제 마음에 따뜻함이 채워져요. 여러 사람들이 따뜻한 마음으로 보는 책자에 제 그림이 사용된다는 게 참 좋고 뿌듯해요.”(홍)

“굿네이버스를 위해 일하면서 대구와 남원도 갔었죠. 일에 찌들려 살다 아이들을 만나서 도움 주는 일을 하면 보람도 느끼고, ‘다시 열심히 일해야지’ 하고 제 스스로 가다듬게 돼요.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을 만나 함께 시간을 지내면서 미소를 찾아냈을 때는 참 기뻤어요.”(박)

박 작가는 어린이 사진을 찍을 때 어려운 환경 속에서 힘들어하는 모습은 옆이나 뒤에서만 찍는다고 말했다. “그 아이들이 나중에 어른이 됐을 때, 아픈 기억만 클로즈업한 사진이 남아 있는 게 상처가 될 수도 있잖아요. 꼭 어려운 처지를 전해야 한다면 아이들의 슬픈 모습보다는 집이나 마을 같은 주변 환경을 찍는 걸로 대신해요.”

홍 작가는 늦은 나이인 24세 때부터 미술을 전공했다. 화가가 되려다 우연히 일러스트레이터의 길로 들어섰다. “공대에 다녔는데, 군에서 제대할 때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제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딱 한번만 미대에 도전해보자 했는데 다행히 합격했죠. 일러스트는 누군가의 부탁으로 처음 시작했는데, 밤을 새워도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남들이 좋아할 것 같은 그림보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는 게 더 좋겠다’, 이런 생각에 일러스트 작업을 더 열심히 하게 됐어요.”

박 작가는 그림으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싶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들에게 줄 성탄카드를 제가 다 그려서 준 적이 있어요.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그림으로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구나’ 생각했죠. 그래서 미대에 갔는데, 게임회사에서 일할 때는 지시받은 그림만 그리니까 그림 그리는 기쁨이 사라졌어요. 회사를 그만두고 일러스트레이터로 전업을 했죠. 아직 많이 부족해요. 내년에는 제가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린 작품을 내놓으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박 작가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나 ‘어린 왕자’처럼 글과 그림이 어우러져 읽는 이의 마음에 울림을 주는 작품을 남기고 싶다고 했다.

제보 받습니다=받는 기쁨보다 도움을 주는 기쁨이 훨씬 더 크다. 돕는 사람이 느끼는 기쁨이 바로 ‘헬퍼스 하이(helper’s high)’다. 새해에는 헬퍼스 하이를 경험하는 이들이 더 많아지길 소망하면서, 소박한 정성을 이웃과 나누며 기뻐하는 사람들을 소개한다.(jonggyo@gmail.com)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