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윤필교]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며

입력 2013-12-30 01:36


언젠가 하게 될 결혼을 꿈꾸며, 신혼살림에 어울리는 예쁜 그릇을 사 모았던 친구가 있었다. 한해 두해 결혼할 날을 기다렸지만, 그날은 오지 않고 덧없이 세월만 흘렀다. 친구가 마흔을 바라볼 무렵 이렇게 말했다. “요즘 그동안 모은 예쁜 그릇을 꺼내 쓰고 있어. 이제 결혼 때문에 보류한 것을 더 이상 미루지 않기로 했거든. 매일매일 특별한 날이니까.”

‘시험에 합격만 하면, 취직만 하면, 결혼만 하면, 병만 나으면, 집만 사면….’ 우리는 그 무언가 절실히 바라던 것을 얻으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산다. 문제는 그 무언가를 기다리느라 현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 친구처럼 이루지 못한 일에 연연하며 살다가 생각을 바꾼 계기가 있었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구엔 반 투안이 쓴 옥중서간은 내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

그는 베트남 전쟁이 끝난 뒤 반혁명 죄로 투옥되어 13년반을 독방에서 보냈다. 어느 날, 여러 해 동안 옥고를 치르고 나온 한 선교사가 “나는 반평생을 감옥에서 풀려나기를 기다리는 데 소비했다”는 말을 떠올리며 이런 결심을 했다. “나는 감옥에서 나갈 날만 기다리지 않고, 현재 이 순간을 사랑하면서 살겠다.” 그때부터 그는 하루를 ‘의미 있는 현재’로 바꾸어 나갔다. 독방을 지키는 경비병들에게 세계 여러 나라 이야기를 들려주고, 외국어도 가르치며 사랑을 실천했다. 뿐만 아니라 옥중서간을 써서 바깥사람들에게 전하기도 했다.

가장 절망적인 그 순간이야말로 가장 나답게 살아가야 할 순간이란 것을 알고, 그 무엇을 행하면서 산다는 것은 참 어렵다. 하지만 그런 태도가 내 인생을 값지게 하는 최선의 삶이 아닐까. 주위를 돌아보면 자기 삶에 절실한 그 무언가 이루어질 날을 기다리느라 과거나 미래에 연연하며 현재를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다. 기다림 자체에만 매달릴 때 소중한 것들을 놓쳐 버릴 수도 있다.

지금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고 기다림 속에서 머뭇거리다가 많은 시간과 감정을 소모하고 있지는 않는가. 한해 끝자락에서 지나온 삶의 발자국을 보며, 내게 주어진 매순간을 잘 누리며 살았는지 돌아본다. 올해도 이제 하루 남았다. 매일을 삶의 마지막 날로 여길 때 현재를 가장 값진 순간으로 살 수 있다. 만족스럽지 못한 현실, 인정하기 싫은 내 모습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지금, 여기, 계속되는 삶을 위하여….’

윤필교(기록문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