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부자 소득세 인상 옳지만 복지공약 수술부터
입력 2013-12-30 01:42
여야가 소득세 최고세율 과표구간을 대폭 낮춰 고소득자로부터 세금을 더 걷겠다고 합의한 것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우리나라 소득세 과표구간은 기형적이었다. 1200만원 이하부터 1200만원 초과∼4600만원 이하, 4600만원 초과∼8800만원 이하, 8800만원 초과∼3억원 이하, 3억원 초과 등 5구간에 따라 6∼38%의 세율을 적용하는데 8800만원 초과∼3억원 이하 구간이 지나치게 넓다.
8800만원가량 버는 사람이 3억원 버는 고소득층과 똑같은 세율에 따라 세금을 내는 것은 누가 봐도 조세 형평에 맞지 않는다. 고소득층 세 부담은 선진국과 비교해도 덜한 편이다. 우리나라는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기준 금액이 1인당 국민소득의 11.7배에 달하는 반면 미국은 7.5배, 영국은 6.1배, 일본은 3.8배에 그친다.
이번 소득세 최고세율 과표구간 조정은 박근혜정부의 사실상 ‘첫 부자증세’라는 의미가 있다. 현 정부는 임기 5년 동안 135조원이 소요되는 복지공약을 다 지키겠다면서도 증세는 안 하겠다고 되풀이해 왔다. 지하경제 양성화와 비과세·감면 축소를 통해 51조원을 마련하고, 예산 절감을 통해 84조원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허망한 꿈이었음이 이미 드러나고 있다. 경기가 안 좋은데 오히려 국세청을 동원해 기업들을 쥐어짜다보니 부작용만 컸던 게 사실이다.
이제라도 증세의 물꼬를 튼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민주당 주장대로 소득세 최고세율 과표구간을 3억원에서 1억5000만원으로 낮추더라도 연간 추가되는 세수는 7000억원에 불과하다. 부자증세만으로 복지 재정을 충당하기는 어렵다.
올해 세수는 목표보다 14조∼15조원 부족할 것이라고 한다. 현오석 부총리는 얼마 전 국회 답변에서 “올해처럼 예외적인 세수부족 상황에서는 예산 조정이 불가피하다”면서 “불용(不用) 처리할 수 있거나 연기할 사업이 무엇인지 보고 있다”고 했다. 문제는 세수 부족이 올해만 예외적인 게 아니라 만성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복지예산이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지출 구조는 선진국형으로 바뀌고 있는데 세입 구조가 바뀌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근 몇 년간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추경 편성이 관례화됐다.
이제는 국민들 앞에 솔직하게 고백하고 선택을 받아야 한다. 복지를 줄일 것인지, 세금을 더 걷을 것인지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증세가 필요하다면 복지공약의 구조조정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불요불급한 복지공약은 수정하는 게 옳다. 대선 공약을 지키자고 엉뚱한 곳에 재정을 낭비하면서 증세에 나선다면 국민들의 저항을 부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