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임만호 (4) 軍복무 면제자임에도 나라·민족 위해 자원입대

입력 2013-12-30 01:51


입영자들이 함평군청에 모이는 시간을 알아본 뒤 뒷주머니에 5000원을 넣고 군청에 갔다. 입영자는 30여명 정도 모여 있었다. 입영자를 점검하고 있던 병사계 직원에게 “학생인데 이번에 지원 입대를 하기 위해 왔으니 받아 달라”고 했다. 병사계 직원은 귀찮다는 듯 “1940년생이 너무 많아서 제1보충역에 편입됐다”면서 “간단한 훈련만 받고 군복무는 면제될 것”이라고 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꼭 입대하고 싶다’고 거듭 말했지만, ‘바쁘니 그만 비켜 달라’는 답만 돌아왔다. 그 직원은 입영자들에게 대기해 놓은 버스에 탑승하라고 지시해놓고는 서류를 가지러 사무실에 들어갔다. 나는 영장도 없이 그 버스에 탔다. 약 1시간 후 버스는 목포역 앞 공업고등학교 운동장에 도착했다.

함평, 무안, 진도, 해남, 완도 등에서 온 200명 이상의 청년들이 운동장에 모여 서류를 접수하고 점검을 받았다. 이어 각자 점심식사를 마친 뒤 1시까지 여기에 집합해 기차로 떠난다고 했다. 함평군에서처럼 담당 공무원에게 입대시켜 달라고 이야기했다. 그 공무원은 전라남도 병력 담당인 듯했는데 함평군 병사계 직원과 비슷한 이유를 대며 ‘입대할 수 없으니 돌아가라’고 했다.

2월 목포의 바닷바람은 찼다. 간단하게 점심을 얻어먹고 오후 1시에 다시 공고 운동장으로 갔다. 인원점검을 한 뒤 4열로 서서 목포역으로 가기 시작했다.

남은 방법은 대열에 무작정 끼어드는 수밖에 없었다. 역으로 들어가니 기차가 기다리고 있었고, 입영자들은 순서대로 기차에 올랐다. 1시간 이상 달려 송정리역에 도착했다. 플랫폼에 군용 트럭 수십 대가 서 있었는데 입영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앞차부터 태우기 시작했다. 여기서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을 것 같아 입영자들이 타고 있던 트럭에 가서 같이 좀 타자고 했다. 한참을 달려 사단 신병훈련소에 도착했다. 신설된 31사단 신병훈련소 연병장은 황토밭 같아서 2월의 겨울바람이 황토 먼지를 일으키고 있었다.

연병장에서는 담당자들이 최종 서류와 인원수를 파악하고 훈련소 영내로 철수하기 시작했다. 뒤따라가던 나는 서류도 없이 입구에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맨 끝에 선 나와 담당 중사 하나만 남았다. 나는 그 중사에게 지금까지 여기에 오게 된 사정을 말하고 입대를 허락해 달라고 부탁했다.

“야 인마! 군대가 너네 안방인 줄 알아!” 담당 중사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나를 부대 밖으로 쫓아내려고 했다. “중사님 말씀처럼 군대가 우리 집 안방이면 말씀드릴 필요도 없이 그냥 들어가지요”라고 말하며 그 중사의 옷자락을 꽉 붙잡았다.

그는 잠깐 기다려 보라고 하더니 종이 한 장을 가지고 나오면서 기록하라고 했다. 신상명세서였다. 열심히 써서 주었더니 힐끗 쳐다봤다. “잠깐 기다리고 있어. 별 희한한 놈 다 있네.” 그는 부대로 들어가더니 10분쯤 후 문을 열고 나에게 오라고 손짓했다. 뛰어갔더니 내 등을 손바닥으로 세게 쳤다.

“신병5중대 훈련병 입영 확정!” 그는 큰 구호와 함께 나를 문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렇게 수속을 마치고 신병5중대로 편성됐다. 그렇게 되고 싶던 군인이 된 것이다. 하나님은 노력하는 자에게 선한 지혜를 주신다는 것을 한 번 더 실감했다. 군 입대를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