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나래] 자기소개서
입력 2013-12-30 01:37
“나 요새 한참 바빴잖아. 봉사활동 다니느라.” “갑자기 웬 봉사활동?” “우리 아들 고3이잖아. 아무래도 내가 직접 해 봐야 자기소개서 쓸 때 제대로 썼나 봐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최근 카페에서 우연히 듣게 된 옆 자리 아줌마들의 대화다. 고3 아들 대학 지원에 필요한 자기소개서 쓰는 데 도움을 주려고 엄마가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인터넷에서 ‘자기소개서 잘 쓴 사례’를 찾아 교묘하게 짜깁기하는 건 다반사요, ‘자기소개서 전문 과외’가 횡행한다는 것도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고3부모에게 자기소개서는 대학수학능력시험만큼은 아니더라도 큰 부담이라서 이 정도는 납득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한다. 자녀가 ‘자기소개서에 쓸 게 없다’고 답답해하면 어쩔 수 없이 엄마가 ‘무엇으로 채울까’ 고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없는 시간을 쪼개 봉사활동을 해 놓고도 ‘표현이 서툴러’ 제 점수를 받지 못하는,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할 순 없는 노릇이란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적어보라는데, 왜 쓸 말이 하나도 없을까. 학교, 학원, 과외, 심지어 봉사활동까지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너무 바빠서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생각해볼 새가 없기 때문 아닐까. ‘제일 친한 친구=스마트폰’이 되면서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는 더 힘들어졌다. 그러니 자기소개서 쓰기가 어려울 수밖에.
학창시절 ‘명상의 시간’이란 게 있었다. 교실 스피커에서 마스네의 ‘타이스의 명상곡’, 그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과 함께 ‘명상의 시간∼’이란 느끼한 남자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 모두 제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5분간 명상을 하든 공상을 하든 졸든 조용히 앉아있었다.
누군가 시켜서 명상을 한다는 데 반감이 없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시간이 나쁘진 않았다. 아침에 엄마한테 그렇게 성질 내고 나온 진짜 이유가 뭔지, 친구랑 내일 야간자율학습 땡땡이 치고 무슨 영화를 보러 갈지, 요새 왜 부쩍 공부하기가 싫은지 등등. 잡다하고 사소한 것일지언정, 내 머릿속으로의 짧은 여행들이 모여 그 시절의 나를,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비록 타이스의 명상곡을 들을 때마다 곡의 아름다움을 느끼기보다 ‘명상의 시간’을 먼저 떠올린다는 부작용이 생기긴 했지만.
이름이나 형식이야 뭐가 됐든, 아이들에게 자기 자신에 대해 혼자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해 보면 어떨까. ‘자기소개서에 쓸 게 하나도 없다’는 아이들이 조금은 줄지 않을까.
김나래 차장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