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편지
입력 2013-12-28 01:35
청마 유치환의 시 ‘행복’은 사랑하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반복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치며, 다른 사람들이 편지를 쓰는 마음까지 살핀다. 그들의 그리움과 슬픔, 즐거움, 다정함이 담긴 사연들을 편지로 전하는 아름다운 마음씨를 노래했다.
청마가 실제 편지를 자주 부쳤던 경남 통영시 중앙우체국은 지금은 사라지고 도로가에 표지석만 덩그러니 서 있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사랑하였으므로 진정 난 행복하였네라”와 같은 구절을 잊지 못하는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곤 한다.
역사적으로는 신라시대에 이미 역(驛)이 있어 나라의 우편을 취급했다. 근대우편제도는 홍영식이 미국·일본 등을 돌아보고 1884년 우정총국을 창설해 인천에 본국을 둔 것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 4일 갑신정변으로 개화파가 숙청됨으로써 우정총국이 폐지돼 갑오경장 이후 부활됐다.
조선시대 최고 석학인 퇴계와 율곡이 주고받은 편지에는 후학을 아끼는 마음씨와 학문의 완성을 위해 노력하는 학자의 정신이 오롯이 남아 있다. 장문의 편지로 서로의 견해를 묻고 답하며 성인이 되는 길을 추구한 선조들의 노력이 눈물겹기까지 하다. 다만 두 사람 간 편지를 집중 연구한 연세대 이광호 교수의 견해에 따르면 퇴계와 율곡 사이엔 넘을 수 없는 생각의 차이가 존재했다는 점이다.
가령, 퇴계의 삶의 방향은 항상 궁극적 진리, 곧 하늘을 향하고 있는 반면 율곡의 관심은 살아있는 현실을 향하고 있었다. 또 퇴계는 자신 안에 있는 하늘의 이법인 본성을 알고 실현하는 자기완성의 학문을 지향한 반면, 율곡은 넓은 세상을 바로잡아 사람이 살 만한 올바른 세상을 만드는 데 관심을 가졌다.
요즘에야 생활필수품이 된 휴대전화 덕분에 편지 부치는 일이 사라진 지 오래됐지만 가끔 친필로 쓴 연하장을 받을 땐 가슴이 뛰곤 한다. 보낸 사람의 마음씨가 글자 하나하나에 묻어나니 휴대전화 문자나 이모티콘으로 인사를 받는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올해가 가기 전 검은색이나 혹은 하늘빛이 어리는 파란색 잉크로 긴 편지를 한 번 써보면 어떨까.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