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산업 추락… 러시아 “아, 옛날이여”

입력 2013-12-28 01:35

지난 7월 러시아 자체 위성항법장치용 인공위성을 탑재하고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발사됐던 ‘프로톤-M’ 로켓이 약 20초 만에 공중 폭발했다. 1961년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을 태운 보스토크 1호를 발사한 이후 세계 우주산업을 호령했던 러시아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로이터통신은 27일 “러시아 우주산업은 수년 동안 위기를 겪고 있다”면서 “과거의 것은 작동하지 않고 새로운 것도 수혈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너무 늦은 개혁=지난 4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13년부터 2020년까지 우주개발에 1조6000루블(약 518억 달러)을 투자하겠다고 밝히며 우주개발 투자를 가속화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의욕에도 불구하고 프로톤 로켓 폭발 사고가 발생하자 러시아는 우주산업 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안을 마련했다. 연방우주청(로스코스모스)에는 우주 산업의 장기 발전 전략 수립과 우주 관련 기업 통제 등의 기능만 남기고 우주청이 직접 관리해온 우주 산업 관련 기업들을 거대 국영기업으로 통폐합한다는 내용이다. 통합 국영 기업의 출범을 내년 4월로 정하고 최근 자동차회사 아브토바즈 출신의 이고르 코마로프를 회장으로 선임했다.

하지만 개혁안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냉정하다. 경쟁을 배제하는 통폐합은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 우주과학잡지 편집장인 이고르 마리닌은 “러시아 우주산업은 정체됐고, 썩어가고 있다”면서 “진작 수술이 됐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돈은 쏟아붓고 있지만 결과가 없다=러시아는 우주산업 관련 투자를 계속 늘리고 있다. 올해 투자금액은 50억 달러(약 5조2600억원) 이상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올해 예산 178억 달러에는 훨씬 못 미치지만 지난 3년간 2배로 늘어난 액수다.

문제는 투입된 돈이 제대로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 위성 발사 기술력은 현재 세계 수준급이지만 전체 수백억 달러에 이르는 세계 우주산업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10%에도 못 미친다. 러시아 회계감사원(RAC)은 지난 7월 보고서에서 “러시아는 세계 평균보다 4배 이상의 자금을 위성 발사 분야에 투자하고 있지만 시장 평균 수익을 얻기가 힘들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프로톤 로켓 폭발 이후 경쟁 업체인 유럽의 아리안스페이스(Arianespace)와 미국 민간 우주기업 스페이스 X에 기존 고객들마저 빼앗기고 있다.

◇문제는 심각한 기술력·전문인력 부족=90년대 발사된 러시아의 궤도선회 우주선들의 수명은 1년을 넘기지 못한다. 미국 우주선의 수명 10년에 비해 형편없는 수치다. 더욱이 최근 제작된 러시아 우주선들도 부품의 8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유리 코프테프 전 연방우주청장은 지난 19일 의회 청문회에서 “러시아는 미국이나 유럽뿐 아니라 중국과 인도에도 뒤처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인력 부족도 심각한 상황이다. 러시아 우주산업 분야 종사 인력 24만명 중 90%가량이 60세 이상이거나 30세 이하다. 소련 시절의 우주인 발레리 류민(73)은 “모든 관련 공장에서 숙련 기술자들이 사라진 상황”이라며 “연방우주청에도 전문가는 없고 대령과 장군들만 있다”고 말했다. 연방우주청을 군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는 점을 비판한 것이다.

맹경환 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