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교차지원 시행 유예”
입력 2013-12-28 01:35
서울대가 문과생의 의대·치대·수의대 교차지원 허용 방침을 당분간 유예키로 했다. 이를 재고해 달라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내년에 치러지는 2015학년도 입시에서는 서울대 의·치·수의대 교차지원이 허용되지 않는다. 지난달 14일 교차지원 허용 방침을 밝힌 뒤 불과 한 달여 만에 번복해 수험생 혼란이 예상된다.
서울대는 27일 총장 부총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학사위원회를 열고 2015학년도 입시에서 교차지원제 도입 방안을 유예하기로 결정했다. 서울대는 지난 24일과 26일에도 입학정책위원회, 입학교사관리위원회 등을 잇따라 열어 이 문제를 논의했다. 박재현 입학본부장은 “입시제도의 급격한 변화가 초·중·고 교육현장과 수험생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서울대는 이번 결정이 ‘잠정 유예’ 조치임을 강조하고 있다. 향후 교육 여건 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다시 입시 제도를 바꿀 수 있다는 의미다. 서울대 관계자는 “교차지원 입학 인원을 많아야 5명 정도로 예상해 별 문제가 없을 줄 알았는데 (수험생들에게) 생각보다 혼란이 오는 것 같아서 속도를 조절해야겠다고 판단했다”면서도 “추후 교육 여건 및 사회 환경에 따라 입시제도가 또다시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내년에 총장 선거가 예정돼 있는 만큼 총장단이 바뀌고 나면 입시 기조가 달라질 가능성도 염두에 둔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국내 최고 대학이 한 달 만에 입시안을 번복하면서 학생들을 배려하지 않은 무책임한 정책을 펼쳤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교차지원을 노리고 외국어고 진학을 결정한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은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지난달 서울대가 교차지원 허용 방침을 밝힌 뒤 치러진 서울 지역 외고 입시에서 지원자 수는 4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전문가들은 ‘문과인 외고를 나와도 서울대 의·치대 갈 수 있다’는 의미인 교차지원 허용 발표로 외고 진학 열풍이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이 발표가 뒤집히면서 1999년 내신 위주 입시 방침에 특목고생 480여명이 집단 자퇴한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교차지원은 문과생이 이과계열 학과를, 또는 이과생이 문과계열 학과를 지원하는 입시 제도다. 서울대가 교차지원 허용 방침을 밝힌 이후 교육계에서는 성적이 우수한 외고 등 특목고 수험생들이 서울대에 대폭 몰려 ‘일반고 공동화 현상’이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졌다. 이에 대교협 내 대학입학전형위원회는 교차지원 허용 방침을 취소해달라고 서울대에 요구했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