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파업 20일째] 노조 지도부 치밀한 전략… 공권력 투입 어렵고 영향력 큰 기관 은신

입력 2013-12-28 01:30

언론사 건물에 있는 민주노총 본부, 조계사, 민주당사….

체포영장이 발부된 철도노조 지도부가 그동안 은신한 장소는 모두 공권력의 강제 투입이 어려운 곳이다. 뿐만 아니라 언론 종교계 정치권 등 여론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기관들이다. 철도노조가 정부와 공권력을 상대로 장기간 ‘싸움’을 벌일 수 있었던 데는 이런 ‘절묘한’ 전략도 한몫했다.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은 체포영장이 발부된 이후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옥에 있는 민주노총 본부로 몸을 피했다. 정부의 강경대응에 철도노조가 고립될 상황에서 공권력 진입이 어려운 곳에 몸을 의지하는 한편 노동계 전체의 문제로 확대시키려는 의도였다. 경찰이 강제 진입에 나섰다가 검거에 실패하면서 노동계의 거센 반발을 불렀고 순식간에 사회적 관심이 증폭됐다.

이어 박태만 철도노조 부위원장은 24일 저녁 서울 견지동 조계사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이 강제진입 직후 모습을 감춘 상태에서 박 부위원장이 협상 재개를 위해 ‘총대’를 멨다는 해석이 나왔다. 조계종이 중재 의사를 밝히면서 26일 최연혜 코레일 사장과 박 부위원장의 면담이 성사됐고 노사 실무교섭이 재개됐다.

27일 오전 마라톤 협상 끝에 실무교섭이 결렬됐다는 소식이 들리자 이번에는 철도노조 최은철 사무처장이 민주당사에 나타났다.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실무교섭 상황에도 철도노조를 강력히 비난하는 등 정부가 전면에 나서지 않자 정치권의 힘을 끌어들이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수서발 KTX 법인 면허 발급을 중단하고 노사정위원회를 구성하자는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다.

김 위원장이 이날 처음 은신했던 민주노총 본부에서 다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를 비판한 것도 경찰이 민주노총 본부에 재진입하기는 어려우리라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혹시 경찰이 재진입해 김 위원장을 체포하더라도 조계사에 있는 박 부위원장이 협상을 계속 진행할 수 있고, 28일로 예정된 민주노총 총파업 집회 동력은 급상승할 게 뻔하다. 철도노조로서는 잃을 게 거의 없는 셈이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