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오형제 낮은 곳으로 날았다… 산타가 된 CEO 봉사모임
입력 2013-12-28 01:52
성탄절을 앞둔 지난 22일 경기도 양평군 왕창면 양평전원교회는 잔칫집 분위기였다. 주방에는 고기와 야채가 가득하고 예배당 옆 도서관에는 선물 꾸러미가 가득했다. 이미란(50) 담임 목사와 산타 모자를 쓴 세 명의 ‘중년신사’는 선물을 포장하느라 정신없었다. 45명이 원하는 선물 목록을 적은 종이를 들고 일일이 이름을 찾아가며 선물을 담았다.
선물 포장을 마친 이들은 주방에 모여 짜장면과 탕수육을 만들며 구슬땀을 흘렸다. 요리를 마치자마자 음식이 식을까 스티로폼 포장재에 나눠 담고 김치와 파인애플, 귤 등을 차에 실었다.
이 목사는 “선물은 주고 싶은 것을 주는 게 아니라 받고 싶은 것을 줘야 한다”며 “그래서 선물 목록을 미리 받아 이틀 전에 선물 사고 장을 보느라 바빴다”고 말했다.
이렇게 사랑과 정성이 더해진 선물을 안고 그들이 달려간 곳은 양평군 청운면 장애인공동체 ‘로뎀의 집’(이정순 원장·happylog.naver.com/grace710). 가져온 음식으로 ‘정신없이’ 장애인들과 식사를 하고, 선물들을 모두 나눠준 신사들은 그제야 산타모자를 벗고 한숨을 돌렸다. “후유∼.”
이날 로뎀의 집 산타가 돼준 이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CEO 봉사모임 ‘독수리 오형제’다. 포스코에너지 조성식(63) 상임고문, 학지사 김진환(56) 대표, 참누리한방병원 남문식(49) 병원장이 이날 함께했다.
이성(53) ㈜한음대표, 최창옥(56) 프라임엔터프라이즈 대표, 이진근 우창산업 부사장은 해외 출장 관계로 참석지 못했다.
조 고문은 “서울대 문헌지식정보 최고위과정에서 만나게 됐다”며 “봉사할 시간이 거의 없는 CEO들에게 이 목사가 봉사 모임을 제안해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에 뜻을 같이하는 다섯 명의 CEO가 독수리 오형제를 결성, 지난해 11월부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의료부분이 절실해 지난달부터 남 원장을 영입했다.
독수리 오형제는 매월 한 차례 로뎀의 집을 방문해 함께한다. 양평군의 예산부족으로 운영비 지원을 못 받아 젊은 원장 부부가 어렵게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 몸이 불편해 외식이 쉽지 않은 장애인들에게 좋은 재료로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주기 위해 오형제가 찾는다. 로뎀의 집 원생들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중국요리. 그래서 이날의 메뉴도 짜장면과 탕수육이다.
“양파 한번 까본 적 없는 분들이 지금은 야채 다듬고 고기를 써는 게 얼마나 능숙한지 모릅니다. 간도 제법 잘 보십니다.” 이 목사 말에 한바탕 웃었다.
김 대표는 이제 설거지 전문가가 다 됐다. 그는 “남을 돕는다는 것 자체가 큰 기쁨이다. 제대로 오래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부끄럽다”고 했다. 김 대표는 이 목사의 아름다운 마음에 반해 따라가려고 더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부천에서 3시간여를 달려오는 남 원장은 음식 만들기와 함께 의술 재능을 기부한다. 그는 나눔은 나눌수록 더 커진다는 생각에 평소 일반 보육원이나 노인정에서 봉사를 했다. 로뎀의 집은 사람들의 방문도 적고 소외된 곳이어서 동참하게 됐다.
지난해 포스코에너지 대표이사직 퇴직 후 상임고문으로 재직 중인 조 고문은 오형제 중 맏형답게 모든 면에서 솔선수범이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쓰임 받을 수 있으면 행복하지 않을까란 생각에서 참여하게 됐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을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들 하는데, 그것은 경제적인 것 뿐 아니라 육체·정신적인 것에도 있습니다. 비교적 정신적으로 나은 상태에 있으면 정신적으로 못한 사람을 도와줄 의무가 있고, 몸이 불편한 장애인을 돕는다면 그것은 육체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입니다. 누구나 사랑을 실천하고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은밀한 중에 퍼지는 구제의 손길을 말씀하셨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 6:3∼4) 사랑과 나눔이 더 그리워지는 연말연시, 수많은 ‘독수리 오형제’가 곳곳에서 일어나길 기대해본다.
양평=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