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의 재발견] 깨끗하고 맛있다… 빗물을 마시자!

입력 2013-12-28 01:34


지난달 경북 구미시에서는 재미있는 실험이 진행됐다. 시민 123명에게 수돗물과 생수, 빗물 중 가장 맛있는 물을 선택해보라는 실험이었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과 이를 지켜본 사람 대다수는 생수가 가장 맛있는 물로 선택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가장 많은 사람의 선택을 받은 물은 56표를 얻은 빗물이었다. 생수는 빗물보다 5표 적은 51표를 받았고, 수돗물은 16표를 얻는 데 그쳤다. 지난 3월 국회에서 있었던 ‘빗물 챌린지’에서도 빗물은 완승을 거뒀다. 빗물은 56%(96표)를 얻으며 절반이 넘는 사람들에게 ‘가장 맛있는 물’로 선택됐다.

실험을 주관한 한무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빗물의 맛이 좋은 건 당연하다”고 말한다. 한 교수는 이유에 대해 ‘빗물 마일리지’ 개념을 들어 설명했다. 그는 “우리가 접하는 물에는 마일리지가 있다. 물은 땅을 거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이물질이 많이 섞이게 된다”며 “하늘에서 직접 떨어지는 빗물은 마일리지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말했다. 맑고 깨끗하기로 유명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생수 중 하나인 ‘클라우드 주스’도 빗물로 만들어진다.

실제로 빗물 속에 녹아 있는 불순물 농도는 통상 5ppm이다. 빗물 1t당 5뷬의 불순물이 포함돼 있다는 의미다. 흐르는 물이 30ppm, 물을 가둬두는 정수장이 60ppm, 우물이 400ppm인 것과 비교했을 때 빗물이 훨씬 깨끗한 셈이다. 청정수로 알려진 강원도 오색약수의 경우도 불순물 농도가 240ppm으로 빗물과 비교할 때 48배 가까이 높다.

빗물이 오염된 대기를 통과한 경우에도 불순물 농도는 10∼20ppm에 불과하다. 최근 대기 중 미세먼지가 증가하면서 이슈로 떠오른 ‘산성 눈’도 서울시 빗물연구센터가 pH 측정기를 이용해 산성도를 검사한 결과 pH 6.98 정도로 중성에 가까웠다. 한 교수는 “산성비라고 해서 모두 산성인 것은 아니며 떨어지는 빗물이 산성이라도 땅에 떨어진 이후 중화가 돼 알칼리성이 된다”고 말했다.

빗물에 대한 평가와 인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그동안은 최대한 빗물이 빨리 배출되도록 하는 게 빗물과 관련한 모든 정책의 목표였다면 앞으로는 적절하게 모아서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는 자원의 개념으로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3년 전까지만 해도 빗물은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먹을 수 없을 뿐더러 홍수를 유발하는 원인으로만 지목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빗물에 대한 기존 인식을 뒤집을 수 있는 연구 결과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빗물이 식수로서도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빗물의 경제적 가치가 크다는 평가까지 더해지면서 빗물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한 교수는 “모든 빗물은 산성을 띠지만 빗물의 산성도 자체는 콜라나 샴푸보다 안전한 수치”라며 “생각을 전환해 빗물의 저장과 활용에 관심을 가지면 홍수도 방지할 수 있는 등 부가적인 효과를 많이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유엔이 말하는 ‘물 부족 국가’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물 관리 부족 국가’”라며 “소규모 빗물 저류조를 이용하면 봄철 가뭄을 막고 비상급수로 사용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