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의 재발견] 전라도 외딴 섬마을 물걱정 끝
입력 2013-12-28 01:34
전라남도 신안군은 1004개 섬으로 이뤄졌다. 그 가운데 유인도는 72개. 이 섬들 중 우리나라 도서 지역 식수원 개발사업 범주에 들지 못해 식수난으로 고생하는 작은 섬들이 있다. 해수담수화나 해저상수관 등의 대상이 되지 못한 곳들이다.
기도(箕島)도 그중 한 곳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단물로 세수하는 것이 평생 소원이었다. 강도 없고 저수지도 없어 오로지 지하수에 의존하는데 바다 한가운데 자리한 섬이라 지하수는 생활용수로 쓰기에 너무 짰다. 그러던 이 마을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지난해 한무영 교수가 이끄는 ‘서울대 빗물봉사단’이 가구마다 빗물 저장 시설을 설치하면서 그토록 바라던 ‘단물 샤워’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저장 시설이 설치되는 데는 1주일이면 충분했다. 신안군 기도의 빗물이용 프로젝트는 지난 5월 ‘2013 에너지 글로브 어워드 국가상’을 받았다. 김영배 기도 이장은 “이제는 커피를 타 먹어도 침전물이 생기지 않는다”며 “빗물로 삶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한 회사나 기관이 지역사회와 결연하고 빗물시설 비용의 일부를 제공해주면서 스스로 활용하도록 알려주는 ‘일사일통(一社一桶)’ 철학을 내세운다. 그는 “일사일통이면 지역주민들은 적은 비용으로 스스로 빗물 관리를 할 수 있다”며 “그 빗물탱크에 회사 로고를 붙여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사회적 책임도 다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모두 윈-윈하는 행복한 물 관리가 가능해지는 셈이다.
가구당 2000만원의 예산이 들어간 기도 빗물 프로젝트도 비용을 ㈜예건, 대림산업, H2L 등 기업이 부담했기에 가능했다. 한 교수는 이렇게 일사일통을 외치며 해외로도 빗물 활용법을 전하고 있다. 남태평양 솔로몬 군도 봉사활동도 일사일통의 일환이었다. 소득의 70%를 식수 구입에 사용해야 했던 솔로몬 군도 빈민가 포트머스 지역 50가구에 식수를 공급할 수 있는 빗물 이용 시설을 설치해줬다. 지역 언론도 맑은 데다 공짜로 식수를 제공하는 빗물 저장 장치에 큰 관심을 보였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는 한 교수팀이 7년째 찾는 단골 지역이다. 인도네시아 재해지역은 상수관이 파괴된 곳이 많고 지하수 및 하천 오염도 심각하다. 베트남 하노이도 오염된 우물을 생활용수로 사용하는 곳이 많다. 매년 보건소나 마을회관 등 5∼7곳에 각 1∼5t 규모로 빗물 저장 시설을 설치하고 있다. 왕복 6시간 이상 물을 길러 다니던 불편이 사라졌고 오염된 식수(우물)는 깨끗한 식수(빗물)로 바뀌었다.
한 교수가 꿈꾸는 일사일통의 종착지는 집집마다 빗물 저장 시설이 설치되는 일우일통(一宇一桶)이다.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물 관리가 그가 그리는 마지막 꿈이다.
황인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