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종 & 마음의 종] 스스로 종소리가 되어 세상을 감싸세요

입력 2013-12-27 18:50 수정 2013-12-28 01:28


지난 24일 오전 서울 효자동 입구에서 인왕산 방향으로 10분을 걷자 30여개의 가파른 계단이 나타났다. 계단 정상에는 ‘서울교회’ 이정표가 보였다. 거기서 다시 골목길을 따라 5분 정도 더 오르니 교회당 정문이 나타났다. 교회 앞 주차장에서 숨고르기를 하며 바라본 하늘. 인왕산 정상이 반쯤 걸려 있다. 걸어 올라온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자 이번엔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왼편으로는 북악산과 청와대가, 오른편엔 서울의 빌딩 스카이라인이 강남까지 이어진다.

풍광에 시선을 뺏기다 뒤늦게 눈에 들어온 것은 교회종탑. 사각 철골 위에 종을 매단 형태의 종탑이 교회 주차장 한편에서 서울시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종은 1958년 건립된 서울교회당 십자가 밑 종탑 내부에 있던 것을 8년 전 교회가 리모델링을 하면서 밖으로 나왔다.

이 교회 담임인 배안용(50) 목사는 이날 종에 걸린 흰색 밧줄을 풀고 있었다. 두세 번 당기니 종이 움직였다. ‘땡∼’ 소리는 예상보다 컸다. 맑은 종소리가 찬 공기를 가르며 사방으로 퍼졌다. “동네가 조용해서 1㎞ 떨어져도 들릴 거예요.” 배 목사는 미소를 지었다. 교회는 매년 송구영신예배 때 이 종을 친다. 그동안 예수님의 나이인 33회를 치다가, 몇 년 전까지 믿음·소망·사랑을 다짐하며 30회를 쳤다. 지금은 아예 횟수가 정해져 있지 않다고 했다.

배 목사는 “요즘엔 주민들이 종을 직접 쳐보고 싶어 종탑 주위로 몰려온다”며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송구영신예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교회 종탑은 최근 종로구 서촌 일대가 주목을 받으면서 덩달아 알려져 하루 평균 20∼30명의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됐다. 배성산(78) 원로목사는 “종은 소리인데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도 소리를 내셨다”며 “시각적으로 십자가가 구원을 나타낸다면 소리(종)는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들려준다”고 말했다.

종(鍾)은 교회가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내는 울림이다. 영국성공회와 루터교회는 오전 6시와 정오, 오후 6시 하루 세 차례씩 종을 울려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냈다. 종은 전통적으로 예배 시간을 알리는 역할을 했고 장례와 혼인예식을 치를 때도 사용됐다.

다양한 종의 쓰임새

한국교회에서는 예배당의 강대상 종으로도 쓰였다. 이는 한국교회만의 독특한 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강대상 종이 ‘땡 땡 땡’ 울리면 예배가 시작됐고 신자들은 흩어진 마음을 다잡았다. 이런 전통은 세계 기독교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형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사도 요한이 죽은 뒤부터 로마의 기독교 국교화 이전까지를 나타내는 속사도시대에는 성경을 봉독하면서 예배가 시작됐고 3∼4세기에는 예배 집례자가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라고 하면, 회중들은 “또한 사제와 함께”라고 응답하면서 예배가 시작됐다. 종교개혁 시대는 회개의 기도와 사죄의 확신으로 예배를 시작했다.

반면 한국교회는 묵도로 예배를 시작했다. 여기엔 강대상 종소리가 포함됐다. 예배를 시작하기 전에 교인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것을 조용하게 하는 방편으로 묵상기도와 종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강대상 종은 처음에는 탁상용 종을 놓고 쳤으며 이후 점차 크기도 커져 금으로 도금한 십자가까지 붙여서 강대상에 올렸다. 요즘엔 예배 형태나 교회건축 양식이 바뀌면서 강대상 종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종소리는 예배용 찬송가에도 발견할 수 있다. 554장 ‘종소리 크게 울려라(Ring out the old, ring in the new)’인데 송구영신 예배용 찬송으로 분류한다. 이 찬송은 1931년 ‘신정찬송가’에 처음 실렸고 1983년 통일찬송가(297장)에도 채택됐다.

작사자는 영국의 시인 앨프리드 테니슨(1809∼1892)으로, 그의 장편시 ‘In Memoriam, 1850’ 제106부에 나오는 8절을 찬송으로 만들었다. 암울한 옛것을 종소리와 함께 보내고 새날을 맞이하자는 내용이다. 우울한 지금의 한국 사회의 상황과도 맞아떨어진다.

부산에서 목회하고 있는 김창범(45) 목사는 “2절의 ‘시기와 분쟁 옛 생각 모두 다 울려 보내고 순결한 삶과 새 맘을 다 함께 맞아들이자’는 부분은 공감이 된다”며 “올 송구영신예배는 이 찬송을 부를 예정”이라고 말했다. 복음성가 작곡가인 김석균이 지은 ‘사랑의 종소리’도 유명하다. 사랑의 종소리가 모두를 감싸게 해달라는 내용으로 90년대와 2000년대에 걸쳐 결혼식 축가로 많이 불려졌다.

손 안에서 울리는 종소리, 핸드벨은 17세기 영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당시엔 ‘체인지 링’을 연습하기 위해 작은 종을 만들었던 것인데 이 종에 음을 첨가하면서 악기가 됐다. 체인지 링은 교회종탑에 달아놓은 종들이 일정한 순서에 따라 울리도록 하는 방법이다. 종지기들은 종탑 종의 숫자가 많아지면서 순서를 익히기 위해 핸드벨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후 핸드벨 6∼12개를 튜닝해서 연주가 가능하도록 고안했고 이를 악기로 사용했다.

유럽에서 성행하던 핸드벨은 19세기에 미국으로 건너왔고 1923년 보스턴에서 결성된 ‘핸드벨콰이어’는 지금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은 74년 미국의 음악선교사였던 맥다니엘이 서울 답십리침례교회에서 첫선을 보인 것이 계기가 돼 큰 교회를 중심으로 핸드벨팀이 생기며 확산됐다.

몸과 마음으로 울리는 종소리

종소리는 요즘 스마트폰 벨소리에서도 들을 수 있다. 서울 잠실에 사는 김은혜(35·여)씨는 지난 1일 자신의 스마트폰 벨소리를 ‘종탑소리’로 설정했다. 김씨는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고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싶어 바꿨다”며 “종소리는 나를 깨우는 소리로 들린다”고 말했다.

대학생 박은우(24)씨는 스마트폰 알람소리를 하루 세 차례 울리도록 해 ‘삼종기도’를 실천하고 있다. 성공회 신자인 박씨는 “오전 6시와 정오, 오후 6시에 알람을 설정했다”며 “오전엔 교회를 위해, 정오는 한국을 위해, 오후엔 세계를 위해 기도한다”고 말했다.

교회 청년부나 각종 구역 모임, 선교사 중보기도팀에서도 카카오톡방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해 기도제목과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특히 카카오톡의 경우 알림음을 종소리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다. 아프리카 선교를 위한 중보기도팀을 운영하는 안혜진씨는 지난달 18일 카카오톡에 중보기도방을 열고 기도제목과 선교사 동향을 올리고 있다. 안씨는 “알림음을 종소리로 변경했다”며 “종이 울릴 때마다 기도하게 된다”고 말했다.

총신대 라영환 교수는 “교회 종탑이 점차 사라지고 종소리를 듣기 어려운 시대가 됐지만 세상은 여전히 따뜻한 종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며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 종소리가 되어 세상을 감쌀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