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강창욱] 사투
입력 2013-12-28 01:30
나는 여기서 삶의 치열함 따위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거슬리는 파리 몇 마리를 죽인 일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지난가을 나는 집 안에 잠입한 파리 일곱 마리를 한 마리도 빠뜨리지 않고 제압해 나갔다. 어떻게 들어왔는지 알 수 없는 파리들은 징그러웠다. 분명 문이란 문은 다 닫고 나갔는데 집에 돌아오니 파리가 윙윙거리며 나를 맞는 게 아닌가. 피둥피둥한 몸으로 봐선 내가 외출한 사이 허물을 벗고 성충이 됐다고 볼 수 없었다. 어디서 굴러먹다 왔는지 모를 파리들은 천지분간 못하는 꼬마들처럼 이 방 저 방을 제멋대로 날아다녔다. 더 참을 수 없었던 건 한 놈이 내 볼에 뽀뽀를 했다는 사실이었다. 주인의 관심을 애걸하는 애완견을 흉내내듯 얼굴에 달라붙어 주둥이로 이리저리 핥고 빨았다. 나는 그때 분명 쪽쪽 소리를 들은 것 같다.
참극은 살충제를 집어들면서 시작됐다. 나는 살충제를 살 때 진지하게 향을 고려한다. 살충제는 향이 좋아야 한다. 꽃향기로 포장된 살충제는 내게 거부감을 주지 않으면서 그 뒤로 충분한 살의를 감추고 있다. 걱정 마, 해치지 않아. 말이 통하지 않는 파리들에게 그런 인상이나마 주려고 나는 물이라도 마시러 가는 사람처럼 태연하게 걸어서 접근했다. 그들을 안심시키려고 얼굴엔 미소까지 지었을 것이다. 살충제는 저승사자처럼 파리를 덮쳤다. 그 가차없는 진압은 나를 안심시키는 동시에 흥분시켰다.
살충제를 뒤집어 쓴 파리들은 먹다 뱉은 수박씨처럼 툭툭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온몸을 뒤틀며 어쩔 줄 몰라 하는 파리 옆으로 또 한 마리가 추락해 함께 뒹굴었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이륙을 시도하는 파리도 멀리 가진 못했다. 파리의 생사가 내 손안에 있었다. 1차 진압을 피한 파리들은 필사적으로 도주했지만 내가 이미 현관문과 창문을 모두 닫아놓은 집에선 독 안에 든 쥐였다. 나는 애초부터 파리를 몰살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파리들은 허공을 돌고 돌았다. 생존본능인지 요행인지 살충제가 좀처럼 닿지 않는 곳에 들어가 한참을 나오지 않는 파리도 있었다. 나는 조계사나 명동성당을 둘러싼 경찰들처럼 그 은신처를 포위하고 파리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모조리 잡기로 결심한 이상 성역은 없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죽은 파리를 실에 매달아 개구리 눈앞에 흔들던 적이 있다. 지금의 누군가는 생명경시적이라고 할지 모를 이 행동이 그땐 엄연한 교과 실습이었다. 동네 개천에서 헤엄치다 잡혀온 개구리는 과학실 탁자 위에 웅크리고 두 눈을 껌벅였다. 어서 아가리를 벌리고 그 긴 혀를 내밀어. 우리는 숨죽이고 끙끙댔지만 개구리는 배가 불렀는지, 우리가 쳐다봐서 긴장했는지 파리를 먹지 않았다. 바람이 들락날락하는 풍선처럼 목덜미만 능청맞게 불룩거렸다. 파리가 죽은 걸 이 놈이 아는 게 아닐까. 우리는 수군거렸다. 개구리는 죽은 파리를 먹지 않는다고 교과서에 적혀 있었다. 참다못한 누군가가 개구리 입을 억지로 벌리고 파리를 집어넣었다. 나는 그때부터 파리를 경멸했는지 모른다. 존중이란 걸 생각할 여지가 없을 만큼 우리는 너무나 확고한 위계질서 속에 있었다.
진압이 거의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살충제를 내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곳곳에서 인공 안개가 천천히 내려앉았고 집 안은 꽃향기로 가득했다. 죽음의 안개 속에서 파리들은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었다. 폭우 속에 길 잃은 아이 같아 측은한 마음도 들 뻔했다. 그들은 긴박하게 비행하며 빛이 들어오는 곳을 찾아 날아갔지만 하나같이 유리창에 부딪치며 고장난 텔레비전 같은 잡음만 낼 뿐이었다. 귓가를 맴돌며 목덜미를 희롱하는 듯한 소리에 나는 다시 살충제를 집어 들었다. 베란다와 화장실 같은 막다른 공간으로 마지막 남은 파리들을 하나씩 몰아넣고 살충제를 난사한 뒤 출구를 봉쇄했다. 살충제는 파리의 청록색 피부를 뚫고 들어가 몸속을 차례차례 장악했을 것이다. 파리들은 날개를 비비며 죽어갔다.
나는 움직이지 않는 파리들을 보면서 나의 과장된 적의(敵意)를 비웃었다. 창문을 열어 내보낼 순 없었을까. 그들에게서 마지막 출구까지 빼앗아 놓고 사투라도 벌이는양 했던 나는 위세를 과시한 것에 불과했다. 권력에 취하면 이렇게 눈이 멀듯 시야가 좁아질까. 눈앞의 파리를 잡아 없앤다고 세상에서 파리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파리가 사라진 세상이 제대로 된 세상도 아닐 것이다.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Lord of the Flies)’에서 무인도에 갇힌 소년들은 서슬 퍼런 창을 들고 암퇘지에 달려든다. 오갈 데 없는 욕구와 불만이 만들어낸 텅 빈 적개심으로 굶주림과 상관없는 사냥에 나선 것이었다. 암퇘지는 옆구리에 창이 꽂힌 채 꽥꽥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지만 소년들은 기어이 쫓아가 멱을 따고 만다. 이런 인간은 자기보다 약한 누구라도 사냥할 수 있을 것이다. 혼자 무리를 이탈한 소년은 시체 위에 들끓는 파리 속에서 자신의 추악함을 마주한다. 나는 내 집에 들어와 죽은 파리들을 주워 담으며 나의 졸렬함을 생각해야 했다.
강창욱 국제부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