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광형] 권력은 국민에게 있다

입력 2013-12-28 01:30


전도연 주연의 ‘집으로 가는 길’과 송강호 주연의 ‘변호인’은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국가와 국민의 관계에 대해 되짚어보게 했다. ‘집으로 가는 길’을 보는 동안 절반은 눈물로, 절반은 분노로 가득한 감정을 억제하기가 어려웠다. 2004년 한 평범한 주부가 프랑스 오를리 국제공항에서 코카인 운반 혐의로 현지 경찰에 체포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주부는 남편이 빚보증을 섰다가 쫄딱 망하고 생활이 어렵게 되자 짐만 운반해 주면 목돈을 주겠다는 남편 후배의 제안을 받고 프랑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그가 운반한 짐 안에는 엄청난 양의 코카인이 들어 있었다. 이로 인해 그는 체포돼 대서양 카리브 연안 프랑스령 마르티니크 섬의 외딴 교도소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짐을 잘못 운반했다는 사실 외에는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철창에 갇힌 그는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죄수들의 구타와 교도관의 성추행 등 갖은 수모와 고초를 겪는다. 망망대해에 가로막혀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절망감, 머리가 한 움큼씩 빠질 정도로 기력이 쇠한 주인공역을 실감나게 해낸 전도연의 열연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여기까지는 다소 눈물 버전이다. 그러나 이후부터는 답답함을 넘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억울한 이 여인의 사연을 귀담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한국대사관은 “아줌마가 코카인이나 운반하다 붙잡히다니 국가적 망신”이라며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코카인을 운반하도록 유인한 범인이 한국에서 붙잡혔는데도 무관심이다.

한국 경찰은 이 여인이 단순히 운반만 했다는 범인의 자백 내용을 대사관에 보냈지만 이를 허투루 다룬 직원들의 업무처리로 프랑스 법원에 전달되지 않는다. 프랑스 법원은 이 여인이 결백하다는 증거가 없으니 2년간 재판을 열지 못하고, 대사관은 자신의 잘못은 생각지도 않고 “프랑스 놈들은 하여간 느려 터져서 일이 안 돼”라며 책임을 떠넘긴다.

영화는 자국민 보호라는 중요 임무를 방기한 대사관의 치부를 작심한 듯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시간10분간 영화를 보는 내내 국민 세금으로 일하는 고위 공직자들의 무사안일과 보신주의에 격분하게 된다. 이 사건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 KBS ‘추적60분’을 통해 방영된 실화다. 당국의 어이없는 행정처리가 10년가량 지난 지금이라고 해서 특별히 달라진 게 있을까.

1980년대 한 인권변호사의 얘기를 다룬 ‘변호인’을 2시간 넘게 보는 동안 역시 가슴이 답답함을 느꼈다. 영화는 1981년 군사정권이 통치기반을 확고히 하고자 조작한 용공사건인 ‘부림 사건’을 소재로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고졸 출신 판사에서 인권변호사로 탈바꿈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송강호의 힘을 다시 한번 보여준 이 영화는 관객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찬사와 혹평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국가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에 국민들은 여전히 안녕하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은 권력 앞에서 무참히 짓밟혀도 괜찮다는 말인가. 정치권력의 횡포는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집으로 가는 길’은 150만 관객을 넘어섰고, ‘변호인’은 300만을 돌파했다. 이런저런 논란에도 관람객들의 깊은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이다. 두 영화의 주제는 헌법 제1조 1·2항과 맞닿아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영화는 별로 그렇지 못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적시하고 있다.

이광형 문화생활부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