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노트-오인숙] 가는 해의 무거움 털어버리고

입력 2013-12-28 01:38

삶의 무게를 느낄 때면 찾아가는 곳이 있다. 봄이면 노란 산수유 꽃이 마을을 뒤덮고 겨울이면 하얀 눈 밑에 빨간 산수유 열매가 아름다운 이천 산수유 마을이다. 그곳에 가면 숨이 제대로 쉬어지는 것만 같다. 그리고 너무 빨리 가는 내 시계가 숨을 고르고 여유를 부리는 것 같아서 좋다. 그뿐이 아니라 사슴을 키우는 소박한 장로님과 권사님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권사님은 피곤을 몰고 가는 도시 사람을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어준다. 그분의 이야기는 들어도 들어도 좋다. 집안 어른들의 신앙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봇짐장사를 하던 아버지가 객지를 떠돌며 예수님을 믿게 된 이야기, 반대하는 집안 어른들 앞에서 예수님 못 믿게 하면 아예 죽겠다고 해서 허락을 받은 이야기, 새파란 새색시였던 자신이 십리가 넘는 호랑이 나온다는 산을 넘어 교회에 다녔다는 이야기, 친정아버지는 성경을 읽으시다가 그 모습 그대로 천국에 가셨고 친정어머니는 목사님 무릎을 베고 주무시듯 천국에 가셨다는 이야기, 시아버님은 자신이 장가가던 날, 색시와 초례상 앞에서 맞절하시던 그 시간에 환하게 웃으며 천국으로 가셨는데 얼굴에 주름살이 다 펴져서 젊은이가 되어 가셨다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그분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복잡하고 군더더기 많은 내 신앙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리고 신앙이란 잘 살려고 믿는 게 아니라 잘 죽으려고 믿는다는 것을 새삼 다지게 된다. 원하는 것도 많고 바라는 것도 많아 본질을 잃은 신앙의 모습을 보게도 된다.

한 해를 마감하며 내 삶이 무겁고 골치 아픈 이유가 ‘오직 예수’라는 단순함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보아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후손에게 들려주어도 부끄럽지 않을 내 신앙의 이야기가 있을까 되돌아보는 지혜도 필요한 것 같다. 지난 한 해의 무거움을 털어버리고, 붙잡지 말아야 했던 모든 줄들을 끊어 버리고 새해에는 가볍게 출발했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다시 살 수 있는 새 날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오인숙(치유상담교육연구원 교수·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