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일도 칼럼]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 죽기 위하여

입력 2013-12-28 01:37


지난 25일 지상파 TV를 통해 ‘죽음보다 강한 사랑’이라는 손양원 목사님의 일대기가 방영되면서 많은 이들이 감동을 받았고 이런 고백도 드렸습니다. “예수 믿는 이유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라면 제가 믿을 이유가 없지요.”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는 가장 천한 것을 가장 귀하게, 가장 낮은 것을 가장 높게, 가장 가치 없는 것을 가장 소중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에 우리는 죄악의 오물을 뒤집어쓰고 사망의 썩은 냄새를 풍기던 무가치한 존재였습니다.

영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살리시려고 죽기 위해 태어나셨고 죽음으로 죽음을 이기신 분이 예수님이시기에 우리가 주님으로 고백하며 주님 가신 길을 따라 가고 있지만 이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는 모습도 보게 됩니다.

한국교회가 예수님께서 걸으신 섬김과 나눔의 길을 따라 가야만 치유되고 회복된다는 사실은 더 이상 물음표를 달 필요도, 내 생각을 덧붙일 필요도 없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묵묵히 누가 알아주거나 말거나 모든 이들을 주님 대하듯 섬기며 내가 가진 작은 것이라도 나눌 때에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도 이제는 더 말할 필요 없습니다. 여기저기서 떠들고 말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고 큰 목소리로 주장하는 단체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손양원 목사님처럼 그 어떤 기득권과는 관심 없이 의롭게 묵묵히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은 보기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오늘의 한국교회와 한국사회를 보면 집단 이기주의가 도를 넘어선 느낌입니다. 서로 편 가르고 패 가르며 키재기하면서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 여념이 없어보입니다.

이런 와중에 얼마 전 ‘밥퍼’에서는 사회 안전망 시스템이 너무도 부실하다는 것이 증명되는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 한결같이 밥퍼의 단골손님으로 오시는 분 중 별명이 ‘스마일 할머니’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분은 아무리 오랜 세월 함께 우리들과 지내면서도 성함을 알려주질 않으셨습니다.

매일 웃고 다니시면서 저 멀리에서라도 저를 보면 달려와서 한번 세게 안아야 직성이 풀리시는 할머니신데, 수천 번을 여쭤도 성함을 알려주지 않으셔서 본명 대신 ‘스마일’이라는 별명으로만 불려진 무의탁 어르신입니다.

그런데 집요한 관심과 돌봄으로 드디어 할머니가 이름도 연고도 없이 무명초로 살아오게 된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열두 살쯤 시골에서 상경한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만, 대한민국 남도 어디선가 태어나서 분명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인데 고향도 모르고 가족도 없고, 아직도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으신 일이 없었고 당연히 기초생활수급비를 단 한 번도 받지 못한 민초 중의 민초입니다. 나라를 빼앗긴 일제 강점기도 아니고 전쟁 직후도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입니까.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다 싶고, 이제까지 이토록 서럽게만 살아오신 할머니의 삶이 너무도 안타까워 울컥거리는 마음을 진정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날로 스마일 할머니와 이야기하면서 이름과 생년월일을 정했고 이제라도 호적을 가지실 수 있도록 밥퍼 스태프들과 관할 경찰서 담당 형사들이 함께 이 일을 진행하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 주변엔 사회 안전망 시스템에서 전혀 보호받지 못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이 계십니다. 어쩌면 여러분 주변에도 스마일 할머니처럼 복지 사각지대에서 태어나 평생 그 그늘을 벗어나지 못해 누군가 찾아가서 관심을 가지고 뜨겁고도 지속적인 사랑을 표현하지 않으면 일생 이렇게 살다가 가버리는 경우가 또 있을 것입니다. 인간 소외의 그늘 속에서 살아가시는 분이 계시다면 담당 기관은 물론이고 나부터 알았다면 먼저 한 분이라도 더 밥맛 나게, 더 살맛 나게 해드려야 아름다운 세상이 한 걸음이라도 더 앞당겨질 것 아니겠습니까.

모두가 손양원 목사님처럼 살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예수 믿는 이유만큼은 분명히 고백해야 할 줄로 압니다. 가는 방향만큼은 정하고 걸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걸으시고 손 목사님이 걸으신 좁은 길을, 허다한 주님의 참된 제자들이 걸어간 그 길을 가다 못가면 쉬었다 가더라도 그 길을 걸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이유는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 죽기 위하여”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들로 하여금 가야 할 길과 해야 할 일을 바른 믿음과 바른 삶으로, 또한 죽음으로써 보여주신 손 목사님이 걸으신 그 길을 함께 걷기를 간절히 소원하면서….

(다일공동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