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명희] 민주주의의 위기

입력 2013-12-27 01:35


“건강한 논쟁 없는 떼법은 안 통해… 줏대 없이 부화뇌동하는 정치권도 문제다”

진보적 자유주의자인 로널드 드워킨은 ‘민주주의는 가능한가’란 책에서 “민주주의는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너른 합의만 있다면 심각한 정치적 논쟁 없이도 건강할 수 있다. 또 합의가 없더라도 논쟁 문화가 있다면 건강할 수 있다. 그러나 깊고 쓰라린 분열만 있고 진정한 논쟁이 없다면, 다수의 횡포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파란 문화(민주당)와 붉은 문화(공화당)가 부의 분배와 부유층 과세, 낙태와 동성결혼, 지구온난화와 성장, 테러와 인권 등을 놓고 사사건건 대립하는 미국 정치현실이 끔찍하다면서도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공통 원칙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얘기했다.

세밑이 뒤숭숭하다. 우리 사회엔 건강한 논쟁은 없고 분열과 갈등만 난무한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가정해 민영화로 가는 수순이라며 20일 가까이 파업을 벌이는 코레일 노조나, 몽둥이로 때려잡겠다고 나선 정부나 오십보백보다. ‘철도 민영화를 위한 꼼수 vs 귀족노조의 철밥통 지키기’. 양쪽은 서로 상대방의 아픈 곳을 후벼파면서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식이다. 의료법인 자회사 설립과 원격의료 허용을 놓고도 ‘영리병원 vs 기득권층 개혁거부’라는 프레임으로 충돌하고 있다. 수십년 된 해묵은 난제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분출하는 중이다.

원칙 있는 대응 외에는 없다는 대처 전 영국 총리의 ‘TINA(There Is No Alternative)’ 정공법을 택한 정부에 맞서 민주노총은 정권퇴진으로 전선을 확대하며 총파업을 예고했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했다. 철도파업에 웬 정권퇴진인가. 민주노총은 그러려니 해도 줏대 없이 부화뇌동하는 야당의 처지도 참 안쓰럽다. 애초 속셈이 거기 있었던 거 아닌지 의심이 드는 이유다. 철도파업이 ‘대선 불복 세력의 대리전’이라는 얘기가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누가 봐도 코레일은 비정상적이다. 부채가 17조6000억원에 달하고 인건비가 매출액의 46.3%나 되는데 어느 부문에 문제가 있는지도 모르는 기형적 구조를 계속 놔둘 수는 없다. 철도 민영화 방안은 김대중정부가 처음 추진했다. 경쟁체제를 도입해 철도 개혁을 추진하려던 것은 노무현정부다. 박근혜정부는 민영화에서 후퇴해 자회사를 만들어 경쟁시켜보자는 것이다. 현오석 부총리의 말마따나 경쟁으로 고비용, 비효율이 드러날 것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면 철도노조가 파업을 벌일 이유가 없다.

의료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해 영리병원 도입을 추진한 것도 노무현정부다. 의료를 산업으로 보고 외국 병원 유치를 가장 먼저 추진한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영리’라는 단어가 주는 선입견을 없애자고 이명박정부는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으로 이름을 바꿨다. 현 정부는 한참 후퇴한 의료법인 자회사 설립을 들고 나왔지만 기득권층의 반발은 여전하다.

국민들을 이롭게 하고 한국경제를 성장시키는 데 여야가 따로 있어서는 안 된다. 여당에서 야당으로 바뀌었다고 자신들이 추진했던 정책을 뒤집고 어깃장 놓는 모습은 볼썽사납다. 이 정부가 하는 일은 무조건 반대하고 보자는 심보가 아니라면 말이다. 외부 세력이 없었다면 진작 철도노조나 의료계가 굴복했을지 모른다.

과거 철강이나 정유, 통신 분야도 국가 기간산업을 민영화하면 요금이 폭등하고 나라가 망할 것처럼 반대가 극심했지만 실보다 득이 많다. 외국 사례를 보더라도 민영화나 경쟁을 통해 오히려 좋아진 경우가 많다. ‘민영화=절대악’이란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박카스나 감기약을 편의점에서 사는데도 약사회의 반발에 부닥쳐 20년이 걸렸다. 오죽했으면 ‘말만 많고 행동은 하지 않는 NATO(No Action, Talk Only) 정부’라고 할까. 민주주의의 가장 큰 장점은 다양성이 보장되면서 다수 의견에 따라 합의를 이뤄가는 것이다. 제 밥그릇을 지키겠다고 ‘떼법’으로 저항하는 것은 폭력을 부르고 민주주의의 위기를 자초할 뿐이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