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금배지 ‘은밀한 유착’… 출판기념회 진실은

입력 2013-12-27 01:34


대기업 임원 A씨는 최근 기자와 만나 “요즘 1주일에 최소 두세 번씩 권당 20만원 하는 책을 사서 보고 있다”며 “가격은 엄청 비싼 책인데 내용은 부실하고 천편일률적인 한심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 임원이 언급한 책은 국회의원들이 최근 출판기념회를 통해 잇따라 내놓고 있는 일종의 자서전 비슷한 종류의 책을 의미한다. 어렸을 때부터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걱정했고, 가난과 질병을 극복했으며 지금은 부조리한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 정치에 뛰어들었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기업들은 연말이면 쏟아져나오는 이런 책들을 수백 권씩 사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라고 푸념한다.

◇연말이면 쏟아지는 국회의원 책들=국민일보가 정보공개를 통해 단독 입수한 ‘국회 내 국회의원 출판기념회 개최 현황’ 자료에 따르면 19대 국회 임기가 시작된 2012년 6월부터 올해 12월까지 18개월 동안 국회에서 열린 출판기념회 건수는 모두 79건(12월 개최 예정 포함)으로 한 달 평균 4.15건에 달했다. 그러나 국회 밖 장소를 빌리거나 해당 의원 지역구에서 출판기념회를 여는 의원도 상당수여서 실제 출판기념회 수는 더욱 많다.

국회 내 출판기념회의 경우 국정감사를 앞둔 9월에나 국감을 마무리한 직후인 11∼12월에 집중됐다. 월별 출판기념회 개최 현황을 보면 11월에만 24회가 열려 최다를 기록했고, 9월과 12월에 각각 18회가 열렸다. 국감을 앞둔 시점에 출판기념회가 있으면 피감기관이나 국감과 관련된 기업들은 의원들 눈치를 보며 알아서 책을 살 수밖에 없다. 또 국감 직후의 출판기념회는 ‘국감에서 잘 봐줬으니 보은을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곤 한다.

◇책을 통한 국회의원과 기업의 음성적 돈거래=출판기념회 수익금은 정치자금법상 얼마를 모금했는지 신고할 의무도 없어 사실상 합법적인 비자금 모집 수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특히 자금력이 큰 기업과 국회의원들의 검은 유착관계가 형성돼 있다.

대기업 관계자 B씨는 “기업과 관련 있는 국회 정무위나 산업통상자원위 등 소속 의원이 출판기념회를 연다고 알려오면 성의 표시를 안 할 수 없다”며 “직접 돈을 건네기도 어려워 기업 명의로 100만∼200만원어치의 책을 구매한다”고 말했다. 다른 대기업 관계자 C씨도 “출판기념회가 겹치기도 해 계열사별로 의논해 순번을 정한 뒤 책을 사기도 한다”며 “기업에 따라 책값으로 500만원 넘게 지불하는 곳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 외에도 각 대기업 임원들은 의원과 개인적 친분을 내세워 출판기념회에 찾아가 책을 구입한다. 대기업 임원 D씨는 “현장에서 책 1권을 사고 20만∼30만원 낸다”며 “연말이 되면 매주 최소 2∼3회는 출판기념회를 쫓아다녀야 한다”고 말했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최소 30대 그룹은 임원이든 기업 차원이든 직간접적으로 출판기념회에 도움을 준다고 보면 된다”고 밝혔다.

◇출판기념회 수입 얼마나 되나=출판기념회에서는 보통 5000권 정도 책을 찍는데 작가 인건비(1000만원) 등을 포함해도 3000만원 정도가 든다고 한다. 3000만원을 투자해 해당 의원이 벌어들이는 금액은 1억원 안팎이라는 게 정설이다.

그러나 여당 의원이면서 선수가 높고, 해당 상임위에 관련 기관이나 기업이 많은 의원들은 평균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 실제 지난해 한 여당 중진 의원이 출판기념회를 연 뒤 “최소 5억은 벌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출판기념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보니 홍보 방법은 갈수록 은밀해지고 있다. 흔적이 남는 초청장이나 문자 대신 주요 상임위와 관련된 기업의 담당자에게 은밀히 전화하거나 기업 대관업무 담당자를 통해 출판회 소식을 알리곤 한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