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아버지 손잡고 갔던 이발소 살아남기 분투… 바리캉 빼고 다 바꾼 '바버샵' 뜬다

입력 2013-12-27 02:33


“오른쪽 머리가 왼쪽보다 0.5㎜에서 7㎜ 정도 길어요. 더 빨리 자라는 거지. 그래서 여기 옆이 좀 뜨는 거야.” 이발사가 지나가듯 건넨 한마디에 손님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흰 가운을 걸친 이발사는 손에 든 가위와 빗을 현란하게 움직이며 단골손님들의 하루 일과까지 살갑게 챙겼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이발소인 서울 공덕동 ‘성우이용원’의 일요일(지난 22일) 오전 풍경은 정겨웠다. 이씨는 손님 머리를 한 올 한 올 정성스레 손질한 뒤 구석 세면대에서 물조리개로 손수 감겨준다. 두피 건강을 위해 식초를 살짝 푼 물로 헹구면 머리 손질이 끝난다.

1927년 문을 연 이 이용원은 이남열(64)씨가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이씨는 “미용실이 28개나 있는 이 동네에선 단골 만들기를 포기했는데 입소문을 타고 멀리서 찾아오는 단골이 많아 영업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1804년 프랑스인 장 바버가 세계 최초로 ‘이발소’ 영업을 시작한 지 210년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 이발소들은 ‘건전한’ 생존을 위해 악전고투하고 있다. 미용실에 밀려 많은 이발소가 퇴폐업소로 전락했고, 남성 손님을 빼앗은 미용실을 상대로 한때 법정 다툼도 벌였다.

1982년부터 2000년까지 총 22만436명, 연평균 7601명이나 되던 이용사 자격증 시험 합격자는 지난해 690명으로 줄었다. 현재 전국 미용사는 14만4000명이 넘지만 이용사는 2만4000여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발 외길을 걷는 전통 이용원이 다시 조명받고, 최신 유행에 맞게 젊은 남성을 공략하는 이색 이발소도 잇따라 문을 열면서 새로운 활로를 찾아가는 중이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이발소 살리기에 팔을 걷고 나섰다.

서울 홍익대 앞과 강남 일대에는 최근 ‘이발소’ 대신 ‘바버샵(barbershop)’이란 간판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홍대 앞에선 ‘낫싱 앤 낫싱(nothing & nothing)’ ‘밤므(bombmme)’ 등 영어 이름을 가진 이발소들이 성업 중이다. 1960∼70년대 유행했던 ‘리젠트 스타일(엘비스 프레슬리 룩)’이나 ‘포마드 스타일’로 입소문이 나서 젊은 남성 단골손님을 상당수 확보했다.

이달 초 서울 한남동에도 ‘미스터(Mr.)’를 뜻하는 독일어 ‘헤아(Herr)’를 상호로 한 이발소가 문을 열었다. 이발부터 파마까지 해주는 건 미용실과 비슷해 보이지만 여기선 열기구를 쓰지 않는 전통 방식을 고수한다. 남자들은 흰머리를 물들이고 수염 관리도 받을 수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가면 ‘아빠와 아들(Father & Son)’이란 특별 이발 서비스도 제공한다. 남성용 넥타이나 머리용품 등도 판매하는 일종의 ‘남성 문화공간’이다.

그동안 이발소는 미용실에 빼앗긴 손님을 되찾으려 여러 방법을 동원했다. ‘머리 감을 때 엎드리면 이발소, 누우면 미용실’이란 우스개가 있지만 공중위생관리법상 이용업은 이발과 면도 등 ‘제모(除毛)’를, 미용업은 파마 염색 등 미용을 담당하는 곳이다.

이용업계는 이를 근거로 정부에 미용실의 업무 범위 일탈을 단속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보건복지부는 2008년 미용실이 ‘남성헤어컷’ ‘남성요금할인’ 등의 광고로 남성 고객을 유인하지 못하게 했다. 2011년에는 미용실의 이발 행위에 벌금 300만원을 부과하라는 유권해석도 내렸다.

그러나 법과 현실의 간극은 컸다. 같은 해 이용업계는 미용실의 이발 행위를 경찰에 고발했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리됐다. 헌법소원 심판 청구도 각하됐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이발소가 퇴폐업소로 변질되거나 문을 닫았다. 대통령 전용 이발사였던 이마저 서울 도심에서 운영하던 이발소를 내놓고 유통업자로 전업해야 했다.

이런 곡절을 겪고 살아남은 이발소들을 위해 지자체도 나섰다. 인천시는 지난달 ‘아들아! 아버지랑 머리 깎으러 가자’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전문가들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발소를 상대로 간판 글씨체, 표지판, 친근한 출입구 디자인 등을 개발해 이미지 쇄신을 돕는 방식이다. 인천시 관계자는 “퇴폐적, 폐쇄적 이미지를 벗고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가는 남성 휴식공간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