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야스쿠니 참배] 한·일 관계 회복 기류 ‘찬물’… 정상회담도 물건너 간 분위기
입력 2013-12-27 03:31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영유권 및 과거사 문제를 놓고 냉랭한 관계를 이어가던 한국과 일본 사이에 메가톤급 악재가 터졌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취임 1년을 맞아 26일 이뤄진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한·일 관계는 물론 동북아 질서에 커다란 후폭풍을 불러올 수밖에 없게 됐다. 특히 이번 사태는 한·일 관계 회복이 필요하다는 국내 일부 여론에도 찬물을 끼얹는 양상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한·일 관계 최악의 국면 불가피=아베 총리의 전격적인 신사 참배는 우리 정부가 거듭 경고했음에도 강행됐다. 때문에 한·일 관계는 이명박정부 때보다 더욱 악화된 국면을 상당 기간 지속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동안 국내 학계를 중심으로 양국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온 게 사실이지만 일본이 나서서 그런 목소리가 나올 여지조차 없애버린 셈이다.
박근혜정부는 민감한 과거사 및 영토 문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방향으로 대일(對日)정책 기조를 세웠으나 향후 이 같은 정책 방향은 상당 부분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 내에선 특히 최근 일본이 미국 등 국제사회를 상대로 한·일 관계 개선 의지를 피력한 것이 결국은 ‘보여주기를 위한 쇼’가 아니었느냐는 비판론도 팽배하다. 정부 당국자는 “일본은 그동안 양국 관계를 개선하자든가 양국 정상끼리 대화해 보자던 이야기를 자기들 스스로 퇴색시킨 것”이라며 “일본 정부의 진정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한·일 정상회담 완전히 물 건너갈 듯=아베 총리의 참배 여파로 한·일 정상회담을 비롯한 양국 간 정치 분야 협력은 줄줄이 취소 또는 연기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 소식통은 “이런 상황에서 정상회담은 나올 수도 없는 얘기”라고 잘라 말했다. 일본은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정상회담을 줄곧 희망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일본 측의 역사인식 등에 근본적 변화가 없는 한 정상회담은 어렵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이에 따라 한·일 정상회담은 최악의 경우 앞으로 남은 박 대통령 임기 4년간 열리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여기에 차관급 전략대화, 안보정책협의회 등 최근 양국 당국 간에 추진되던 회의 역시 당분간 동결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일본의 책임 있는 정부 인사 또는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선 엄중하게 대응해 왔다. 지난 4월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의 신사 참배 직후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일본 방문을 전격 취소할 정도였다. 이런 한국 정부의 입장을 잘 알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정부의 수반인 아베 총리가 직접 참배에 나선 것은 일본 정부가 앞으로 한·일 관계는 최악의 수준으로 가도 연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