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인서울 대학’ 에 대한 학부모들의 집착

입력 2013-12-27 01:35


입시가족/김현주/새물결

정권 따라 매번 바뀌어 학부모와 수험생을 혼란에 빠뜨리는 대학입시제도, 제 역할을 못 하는 학교와 교사, 괴물처럼 커져 버린 사교육 시장, 세계 최고 수준의 청소년 자살률. 한국의 교육 문제는 정부도, 교사도, 그 누구도 더는 손대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누구도 이렇다 할 해법을 못 내놓는 상황이다.

책은 자녀 교육의 당사자이지만 그동안 주체로 조명 받지 못했던 부모들의 내밀한 속 이야기를 통해 부모들의 과열된 ‘교육열’의 실체와 원인을 파고들어 간다. 자녀의 학업 성취에 대한 부모의 강박과 조바심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 대학 졸업장이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보호 장치가 되지 못하는 현실에서 과연 이러한 교육열이 여전히 유효한지 질문을 던진다.

프랑스에서 가족사회학을 전공한 뒤 ‘지역아카데미’ 이사로 있는 저자는 이를 위해 서울에 살고, 스스로 중산층이라 생각하며, 중·고교생 자녀를 둔 스물네 가족과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작은 아이가 아직 고등학생이라서 시간, 공간, 소리까지 절제해야 해요. 얘기하더라도 (공부하는 데) 방해가 안 되게 들어가서 하고. (아내와) 둘이 앉아 있어도 자녀 얘기만 하고 부부만의 생활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두 자녀를 둔 51세 회사원 아버지의 말처럼, 중·고교생 자녀가 있는 한국의 부모들은 ‘시간, 공간, 소리까지 절제하는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부모들은 절제하는 삶을 통해 무엇을 이루고 싶은 것일까. 저자는 ‘인서울 대학’이라는 키워드로 중산층 부모들의 교육 열기를 해부한다.

이들에게 ‘인서울 대학’은 단순히 ‘서울에 있는(in Seoul)’ 대학이 아니라 서울 소재 4년제 대학 중 누구나 이름을 알 만한 학교를 뜻한다. ‘SKY’로 불리는 서울대, 연·고대가 모두의 목표가 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인서울 대학은 학벌 사회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반드시 입성해야 할 마지노선이라는 점에서 중산층 부모의 최종 목표가 된다.

하지만 앞으로의 세상은 대학 간판만으로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저자는 교육을 통한 계층 상승에 대한 부모들의 기대 수준 역시 달라져 있음을 포착해내고, 이를 ‘중상층’이란 용어를 들어 설명한다. “부모들의 기대란 자녀가 상류층 지배 계급으로 편입되는 수준의 것이라기보다 직업적 전문성과 자율성을 평균적인 중산층보다 좀 더 누릴 수 있고, 그에 따른 경제적 여유를 확보할 수 있는 중상층 수준의 삶을 사는 것”이라는 거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조금만 더 지원하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닿을 수 있는 현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기에 사교육 시장 등에 대한 경제적 자본 투입이 지속적이고도 경쟁적으로 이루어지게 됐다”고 분석한다.

책에는 아이를 차로 마중하느라 인간관계가 끊어지고, 유일한 취미인 낚시마저 참고 사는 아빠부터 자녀가 고3이 된 뒤 모의고사 성적에 울고 웃다 우울증을 앓게 된 엄마 등, 남 일 같지 않은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저자는 서로 다른 부모들의 목소리에서 자녀의 행복한 삶, 부모로서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하나의 흐름이 관통하고 있음을 찾아낸다. 무엇보다 급변하는 지식 경제 현실을 봤을 때 인서울 대학 간판이 중요한 게 아니라 스스로 행복한 삶을 추구하고 개척해나갈 능력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한 교육 목적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인터뷰 대상자들이 서울이라는 지역적 공간에 한정돼있다는 점은 아쉽다. 그럼에도 부모와 자녀들의 목소리를 과거 한국 부모의 교육열에 대한 유의미한 연구 결과와 접목해 사적인 영역으로 치부되던 ‘부모의 교육열’을 논의의 장으로 끌어낸 점은 의미가 있다. 다른 교육 서적과 마찬가지로 명쾌한 답을 주진 않지만 적어도 독자들로 하여금 ‘나는 어떤 부모로 살 것인가’ 자문하게 만든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