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라틴 아메리카 최고 작가의 마지막 소설
입력 2013-12-27 01:35
2666/로베르토 볼라뇨/ 열린책들
2001년 칠레 작가 로베르트 볼라뇨가 ‘칠레의 밤’을 발표했을 때 세계 평단은 그 독특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찬사를 쏟아냈다. 칠레의 밤은 사제이자 문학비평가인 주인공 세바스티안 우루티아 신부가 임종을 앞두고 쏟아내는 독백만으로 이뤄진 짧은 소설. 155쪽에 불과하지만 피노체트 군사 정권이 저지른 범죄를 통해 광기 같은 폭력이 사회를 덮칠 때 문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미국 평론가 수전 손택은 “감정의 경이로운 강, 빛나는 명상, 매혹적인 판타지. 세계 문학에서 영속적인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현대 소설로, 볼라뇨의 작품 중 가장 독창적이며 특별한 책”이라고 평했다.
이 작품의 성공 이후 그에겐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르시아 마르케스 이후 라틴 아메리카에 등장한 최고의 작가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국내에서도 2010년 번역 소개되면서 ‘볼라뇨 광팬’이 생겼다.
그런 그가 2003년 간 질환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온 힘을 다해 쓴 유작 ‘2666’이 번역돼 나왔다. 그는 군사 정권을 피해 정치적 망명지로 택한 스페인에서 작품 집필에 매달렸고, 원고를 끝낸 뒤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752쪽에 달하는 대작으로, 1∼5부 5권으로 구성됐다. 각 부의 내용은 관계없는 듯 보이면서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범죄의 도시’ 멕시코 후아레스를 모티브 삼아 창조한 ‘산타 테레사’를 배경으로 유령 작가와 연쇄 살인자라는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작가는 유럽과 남아메리카 두 개의 대륙을 80년이란 시간을 두고 넘나들며 전쟁, 독재, 대학살로 얼룩진 인간의 악의 기원을 파헤친다.
1부는 탁상공론 끝에 비평가들이 유령 작가 ‘베노 폰 아르킴볼디’를 찾아 멕시코 국경도시인 산타 테레사로 떠나는 내용이다. 2부에선 아르킴볼디의 책을 번역한 칠레 교수 아말피타노가 등장하고, 3부는 권투 경기 취재차 산타 테레사로 온 미국 신문 기자 오스카 페이트가 중심인물이다. 1993년 1월 열세 살 소녀의 시신 발견을 시작으로 끝도 없이 죽어나가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다뤄지는 4부는 사실상 각 부와 연결되며 중심축 역할을 한다. 독자들은 5부에 이르러 아르킴볼디의 정체를 접하게 된다.
작가는 현실과 상상,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라틴 아메리카 문학 특유의 환상성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제목 ‘2666’의 의미에 대해 어떤 설명도 남기지 않은 채 해석 여부를 오롯이 독자들의 몫으로 남겼다. 라틴 아메리카 문학과 기존 소설 문법을 깨뜨린 메타 소설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매력적이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다. 송병선 옮김.
김나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