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혼돈·불안’ 많이 안녕하지 못했던 대한민국
입력 2013-12-27 01:29
책으로 본 계사년 365일
올 한 해에도 셀 수 없이 다양한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책은 그 시대상을, 동시대 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반영한다. 특히 올해 주목받은 책과 베스트셀러 목록 등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우리 시대 사람들의 관심이 어디에 쏠려있는지를 볼 수 있다. 책으로 읽어낸 2013년 한국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답이 안 보이는 교육 현장=10대 학생들의 삶뿐만 아니라 40∼50대 부모의 삶까지도 지배하는 교육 문제를 해결할 길은 요원해 보인다. 만만한 게 학교라고, 학교 현장과 교사에 대한 질타가 쏟아지지만 구체적으로 정말 문제가 무엇인지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엄기호씨의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따비)는 교사들의 목소리를 통해 폐허가 된 학교 현장으로 안내한다. 수업이나 교육 문제에 대해 동료 교사들과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을 정도로 침묵의 공간이 된 교무실, 대놓고 노래하고 게임을 하며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들, 그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교사들의 처지가 가감 없이 드러난다. 교육잡지 ‘민들레’의 발행인인 현병호씨는 ‘우리 아이들은 안녕하십니까’(양철북)를 통해 교육에 대한 부모들의 두려움을 직시하자고 말한다. 학교가 교육이 무엇을 가져다줄지 알지 못해 두려워하고 주체성을 형성하지 못한 부모들이 아이들을 학교나 학원이 아니라 자신들이 만든 욕망의 제단에 제물로 올린 것이라는 고발이 뼈아프다.
◇안녕하지 못한 20대=‘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안부 인사로 시작한 대자보 하나로 터져버린 20대의 불만은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88만원 세대’로 출발한 이들이 스스로를 ‘잉여’로 부르는 지경이 되도록 기성세대는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잉여 세대’는 사회 변화와 발전에 어떤 기여도 하지 못하고 그저 남아돈다는 의미다. 최태섭씨의 ‘잉여사회’(웅진지식하우스), 한윤형씨의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어크로스)에서 당사자들의 목소리로 그 현실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그렇다고 20대가 암울한 시대의 피해자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사회학자 오찬호씨는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개마고원)’를 통해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불이익에 순응하고 도리어 경쟁에 앞장서며 차별을 당연시하는, 가해자이자 괴물이 된 20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박가분씨는 ‘일베의 사상’(오월의 봄)을 통해 갈 곳 없는 청춘들이 ‘일베’라는 사이버 공간에서 증오를 분출하는 현상을 분석했다.
◇사회 현상이 된 1인 가족=‘나 혼자 산다’는 제목의 TV 프로그램이 등장할 정도로 이제 ‘1인 가족’은 사회적 현상이 됐다. 아주대 노명우 교수는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사월의 책)에서 독신생활에 색다른 시각의 돋보기를 들이댄다. ‘어쩌다 보니’ 결혼하지 못했고, ‘어쩔 수 없어서’ 이혼을 선택한 사람들이 더 많은 현실에서 이제 혼자 사는 것은 단순히 결혼하지 않았다는 의미를 넘어 자신의 선택을 책임지려는 자세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혼자 사는 삶을 사회학적으로 고찰한 노 교수와 달리 한양대 전영수 교수는 ‘이케아 세대, 그들의 역습이 시작됐다’(중앙북스)를 통해 이 세대가 앞으로 한국 사회에 가져올 경제적 파장에 주목한다. 이케아 세대란 세련된 디자인을 지녔지만 내구성은 다소 약한 스웨덴 가구 브랜드 이케아(IKEA)에 빗댄 표현. 해외여행과 어학연수 등으로 해외 문화에 익숙해 높은 안목을 갖고 있지만 결혼, 출산, 양육, 내 집 마련 등 어느 것 하나 감당하지 못한 채 전세 또는 월세에서 ‘싱글 라이프’로 살아가는 30대를 뜻한다. 결국 ‘저출산 고령화’로 귀결되는 1인 가족 현상에 대해 절박하게 인식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돈! 돈! 돈! 돈이 뭐기에=돈과 권력을 모두 가진 1%와 그렇지 못한 99%로 나뉜, 처절한 양극화 시대. 하루하루가 고단한 사람들은 이제 자기 계발의 의지마저 점점 잃고 산다. 한때 날개 돋친 듯 팔리던 자기계발서는 주춤해졌고, 오히려 자기 계발을 강요한 사회와 이를 부추긴 자기계발서를 ‘거대한 사기극’(북바이북)이라고 고발한 책도 나왔다.
그래도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부자처럼 돈을 벌 수 있을까 궁금하다. 부자들의 돈 버는 법은 어떻게 다른지 미국과 독일 등 선진국의 아마존 차트를 점령한 책들이 주목받은 이유다. ‘부자들이 말해주지 않는 진정한 부를 얻는 방법’이란 부제가 달린 ‘부의 추월차선’(토트 출판사)에서 저자 엠제이 드마코는 알뜰살뜰 절약해서 돈을 모으라는 식의 충고 대신 젊었을 때 빨리 돈을 모으라고 주문한다. 독일에서 극찬 받은 ‘부자들의 생각법’(갤리온)에서 저자 하노 벡은 돈의 문제를 심리학적으로 접근해 풀어준다.
반면 더는 돈의 노예가 되지 말고 인문학적 성찰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진정한 자유를 누리라는 목소리도 커졌다. 게오르그 짐멜의 ‘돈의 철학’(길)은 현대인의 물적 경제적 토대가 되는 돈과 개인의 영혼이 어떻게 결합할 수 있을지 들여다본다. 경제학에 갇혀있던 돈의 문제를 사회학적, 심리학적, 철학적 영역으로 확장시킨 역작이다. 또 ‘거리의 철학자’ 강신주와 올해 한국을 찾았던 세계적인 폴란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저서들 역시, 자본주의의 병폐로 인간다운 삶이 어려운 현실이지만 성찰을 통한 개인의 자각과 변화가 필요하다고 촉구해 주목받았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