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당국 “중위험·중수익 상품 투자를” 타령했지만 ‘헛심’

입력 2013-12-26 01:34


“ELS(주가연계증권)는 주가지수가 하락해도 일정 수준의 수익률을 확보할 수 있는 상품입니다. 지수형·원금보장형 ELS에 꾸준히 투자하세요.”(A증권사 PB팀장)

“저금리에 불경기여서 단기상품 매력이 떨어집니다. 경기부양 가능성이 큰 만큼 중위험·중수익 자산으로 눈을 돌리세요.”(B은행 PB팀장)

지난해 말 은행과 증권사의 자산관리사들은 입을 모아 ‘중위험·중수익’ 상품에 투자하라고 조언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조언 내용은 변하지 않았다. 금융당국도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중위험·중수익 상품의 활성화가 필수적이라고 본다. 하지만 지나치게 어려운 상품인 데다 불완전판매도 많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자본시장연구원으로부터 ‘중위험·중수익 금융투자상품 현황’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 받았다고 25일 밝혔다.

이 보고서에는 우리나라 중위험·중수익 상품 발행 및 판매 추이 등과 판매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방안이 담겨있다. 지난 2일 금융위가 발표한 ‘자본시장 경쟁력 강화방안’에 따른 후속 조치다.

중위험·중수익 상품은 주식을 직접 사는 것보다는 덜 위험하고, 국채를 사는 것보다는 높은 수익을 올리는 투자 상품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ETF(상장지수펀드), ELS, DLS(파생결합증권) 등이 있다. 상품에 따라 원금보장이 되는 경우도 많아 위험도가 직접투자에 비해 매우 낮다.

수익에 목마른 금융권뿐 아니라 금융당국까지 나서 중위험·중수익 상품 지원사격에 나선 건 자본시장의 침체가 매우 심각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두드러지면서 투자자들은 주식시장을 철저히 외면하기 시작했다. 가장 안전한 투자처인 은행 상품 역시 수익률이 연 3%가 되지 않아 투자자들의 이목을 끌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굳게 닫은 지갑을 열 방안이 ELS를 필두로 한 중위험·중수익 상품뿐이라는 게 금융위의 판단이다. 최준우 금융위 자본시장과장은 “고령화 현상이 강해질수록 결국 자본시장 투자수요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중위험·중수익 상품은 주식 등에 비해 기대수익은 낮지만 그만큼 안전하니 이쪽으로 적극 눈을 돌리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올해 중위험·중수익 상품에도 별다른 눈길을 주지 않았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ELS발행량은 지난 1월 4조754억원에서 9월 2조851억원으로 반 토막 수준으로 줄었다. 지난해 3월 5조2653억원어치가 발행되던 때와 정반대의 모습이다.

예·적금과 주식시장이 모두 부진한데도 중위험·중수익 상품이 별다른 인기를 끌지 못한 건 상품 구조가 무턱대고 투자하기에 지나치게 복잡한 탓이다. 실제 지난해 금융감독원의 ELS 미스터리쇼핑(암행감찰) 결과, 90점 이상의 ‘우수’ 등급을 받은 증권사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증권사들이 제대로 팔 수 없을 만큼 설명이 어려워 투자자들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증권업계는 중위험·중수익에 매달리는 것보다 주식시장 자체를 일으킬 수 있는 기반조성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창구에서 팔아보면 중위험·중수익 상품이 불완전판매가 일어나기 가장 좋은 상품”이라며 “자본시장을 활성화하려면 이런 복잡한 상품 판매를 유도할 게 아니라 주식시장에 걸려 있는 규제들을 풀어서 증권사들이 자율경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