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손가락 부러뜨려 산재보험금 등 19억 타내

입력 2013-12-26 01:51


무자격 손해사정업체를 운영하던 김모(39)씨는 지난 1월 자신의 매형 유모(51)씨에게 솔깃한 제안을 했다. 손가락을 부러뜨린 뒤 산업재해를 당했다고 속이면 목돈을 만질 수 있다는 얘기였다. 궁핍하게 생활하던 유씨는 쉽게 유혹에 빠졌다. 전문적으로 손가락을 골절시키는 속칭 ‘손가락치기’ 기술자 장모(52)씨가 동원됐다.

이들은 건물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1인 사업장을 허위로 만들고 산재보험도 들었다. 보험 가입 당일 장씨는 유씨의 오른손에 마취 주사를 놓은 뒤 망치와 스패너로 엄지손가락을 부러뜨렸다. 유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휴업급여를 신청해 5070만원을 받아냈다. 민간보험회사 2곳에서도 550만원을 타냈다. 김씨는 매형뿐 아니라 의붓아들(23)도 꾀어 역시 장씨를 통해 엄지손가락을 부러뜨린 뒤 근로복지공단과 10개 보험사로부터 모두 9100여만원을 타내게 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부장검사 윤장석)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위반 혐의 등으로 장씨와 김씨, 보험금 부정수급자 등 8명을 구속기소했다고 25일 밝혔다. 또 부정수급자 11명을 불구속 기소하고, 4명을 지명 수배했다. 이들은 2009년 6월∼올 10월 인천과 경기도 부천·시흥 일대를 돌며 이른바 ‘산재작업’을 벌여 19억2400만원을 부당 수령한 것으로 조사됐다.

산재작업 시나리오는 기술자 장씨와 브로커 김씨가 주도해서 짰다. 장씨는 과거 산재지정병원 사무장으로 일해 제도의 허점을 꿰고 있었다. 이들은 중소기업 사업주 또는 2000만원 미만 공사의 경우 산재보험 임의가입대상으로 분류돼 가입 절차가 간소하고, 외상성 사고는 보험금이 신속히 지급된다는 점을 악용했다. 주로 엄지손가락을 골절시킨 것도 다른 부위보다 장해등급이 높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가족이나 지인, 교도소 동기 등을 끌어들여 산재 피해자, 사업주, 목격자 등의 역할을 교대로 맡게 했다. 1인 사업주를 가장해 빈 사무실을 빌린 뒤 내부 공사를 하다 사고가 발생한 것처럼 꾸미는 수법이다. 한 가담자는 2009년 7월부터 3년 동안 왼쪽 엄지손가락과 왼쪽 엄지발가락, 오른쪽 검지를 차례로 부러뜨려 2억6100만원을 챙기기도 했다. 장씨와 김씨는 보험금을 타낼 때마다 평균 1000만원 정도를 수수료로 뗐다고 한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11월 사기 징후를 포착하고 수사를 의뢰했다. 검찰 관계자는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기 위한 산재보험 제도를 악용한 지능적·조직적 범죄”라며 “해당 기관에 통보해 손실된 보험급여를 환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