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권 추락에 교단 ‘대들보’ 흔들린다
입력 2013-12-26 03:15
올해로 교편을 잡은 지 34년째에 접어든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 A씨(57·여)는 지난달 중반 벼르고 벼르던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불과 4∼5년 전까지만 해도 정년퇴직이 목표였지만, 급속도로 변하는 업무환경에 적응하기 쉽지 않고 학생 생활지도에도 힘이 부쳤기 때문이다. A씨는 “주변 교대 동창들 얘기를 들어보면, 올해 명퇴 신청을 했거나 이미 명퇴를 한 친구들이 꽤 된다”면서 “하지만 명퇴를 신청한다고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에, 내년 2월 발표까지 모두 노심초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급변하는 교육환경에 지쳐 명예퇴직을 희망하는 교사가 늘고 있다. 중견 교사들의 ‘명퇴 러시’에 교단의 안정화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따른다. 하지만 내년의 경우 예산 부족으로 신청자 4명 중 3명꼴로 명퇴가 반려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명퇴=하늘의 별따기’란 말도 나오고 있다.
25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2014년 2월으로 예정된 명예퇴직 신청자 수는 올해 2월 1068명보다 17.8% 증가한 1258명으로 집계됐다. 2010년 518명, 2011년 732명, 2012년 919명에 이어 최근 5년 연속 증가세다. 문제는 이들의 요구를 수용할 만한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은 내년 2월 명퇴 신청자들에게 지급될 2014년도 명예퇴직 예산으로 300명분의 몫을 잡아놓은 상태다. 지난해 1223명, 올해 1237명에게 각각 교사명예퇴직수당으로 1050억원, 1060억원을 집행했던 것에 비해 대폭 삭감된 액수다. 1인당 평균 8500만원에 이르는 명예퇴직수당 예산 편성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2014년도 전체 예산이 300억원 정도 늘어났지만 무상급식, 누리교육 등에 다 들어갔기 때문에 1인당 8500만원씩 사용할 예산이 없다”며 “2014년도 책정예산으로는 신청자 4명 중에 3명은 신청이 반려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교육계 일각에서는 ‘예산 부족으로 인한 명퇴 반려현상’보다, 학교 내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재직기간 20년 이상 교사들의 ‘명퇴 러시’ 현상 자체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년 넘게 교직에 몸담고 있는 한 교사(52)는 “지난여름에도 같은 교회에 다니던 수학 교사가 명예퇴직을 했다”며 “중견 교사들이 현장에서 리더 역할을 하며 젊은 교사들의 멘토 역할도 담당하고 있어 교육 인적 부분에 있어 그 공백이 더 크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김무성 교총대변인은 “예산이 적어 명예퇴직하는 교사들의 수는 적겠지만 이 문제를 예산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현장에서의 교사들의 고충이 명퇴 신청자 수 증가로 드러난 만큼 교사들이 교직에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교수권을 보장하는 제도가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