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법인, 또 다른 민영화 논란] 연간 최대 1500억원 세제 혜택…40년째 의료법인 ‘비영리’ 원칙
입력 2013-12-26 01:28 수정 2013-12-26 03:29
‘의료민영화’ 논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내 의료법인의 성격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국내 의료계에 의료법인이 등장한 건 40년 전인 1973년이었다. 규모가 영세한 개인 소유의 병·의원을 법인으로 전환시킨 뒤 세금혜택을 줘 규모를 키우자는 취지였다. 대신 환자 치료로 생긴 수익은 개인이 챙기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의료법인에 ‘비영리’란 꼬리표가 붙는 이유다. 영리 의료법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초창기 20개 안팎이던 의료법인은 이후 848개(2013년 9월 기준)까지 40배 이상 폭증했다. 이들 의료법인이 길병원 명지병원 을지병원 분당차병원 같은 의료기관 1176개를 운영하고 있다.
정부는 지금도 의료법인의 세금을 깎아준다. 개인 병·의원은 종합소득세(6~38%)를 내는 데 반해 의료법인은 세율이 낮은 법인세(10~22%)를, 그것도 50% 감면받는다. 여기에 취득세 재산세 등 지방세 일부와 상속·증여세도 면제받는다. 한국지방세연구원의 ‘지방세 비과세·감면총서’를 보면 의료법인병원 524곳이 받은 지방세 감면액은 연간 480억2290만원(2009년 기준)이다. 법인세 등 기타 감면규모에 대한 통계는 없지만 전문가들은 1000억원 이상으로 추정한다. 한해 의료법인들이 ‘의료’라는 공익적 행위를 이유로 면제받는 세금이 최소 500억~1500억원은 되는 셈이다.
의료법인의 자회사 설립 및 인수합병을 허용한 정부의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추진방안을 놓고 의료 전문가들 사이에서 “세금혜택을 퍼부으며 40년 동안 지켜온 비영리 의료법인이라는 틀을 허무는 위험한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부 방안에 따르면 앞으로 의료법인들은 병원 수익을 투자해 의료기기, 의약품개발, 숙박업, 외국인환자유치업 등에 자회사를 세우고, 인수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울 수 있게 된다.
정형선 연세대 교수는 “(자회사 허용은) 돈을 외부로 안 뺀다는 걸 전제로 세금혜택을 받아온 비영리 의료법인에게 갑자기 영리법인처럼 행동할 길을 열어준다”며 “수십년간 유지돼온 의료체계를 흔드는 위험한 조치”라고 우려했다.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도 “일감몰아주기, 편법상속, 병원 사고팔기 등 편법이 난무할 수 있다”며 “의료법인의 수익이 자회사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허용되는 순간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게 된다”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가장 나쁜 경우를 예상한 시나리오를 말한다면 현재도 범죄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최대한 안전장치를 만들고 감시하겠다는 게 정부 입장”이라며 “부작용보다는 부대사업이 활성화되고 수익기반이 창출돼 의료법인의 고질적 경영난이 해소되는 긍정적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영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