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법인, 또 다른 민영화 논란] “의료 품질 개선” “먹튀 양산” 절충없는 극단적 대치만

입력 2013-12-26 01:28 수정 2013-12-26 03:27


병원의 자회사 설립을 골자로 한 서비스산업발전법을 ‘의료민영화’로 단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건강보험체계가 흔들린다는 주장도 앞서가는 측면이 있다. 의료계 내부에서는 이 정책의 시행으로 갈리는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다른 목소리가 존재한다. ‘철도 민영화’ 논란과는 다른 시각으로 봐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의료계가 ‘민영화 프레임’으로 정부를 공격하고, 정부는 그 논리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철도 민영화’ 논란과 갈등구조가 유사하다.

병원의 자회사 설립 정책을 비판하는 의료계는 의료재단이 편법 상속 수단으로 활용되거나 자회사에 수익을 빼돌린 뒤 병원을 팔고 나가는 ‘먹튀’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계한다. 자회사 수익을 위해 의사들이 과잉진료를 하는 극단적인 영리추구 행태가 등장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부는 오해와 불신 탓이라고 일축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경영난에 시달리던 병원의 수익구조가 개선되면 시설 투자가 늘고 의료인력에 대한 대우가 좋아져 서비스 질이 높아질 것”이라고 반박했다.

의료민영화는 그 논란 자체를 경계해야 한다는 정부 반박에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 제도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전문가들의 우려와 지적은 귀 기울여 들을 만한 것들도 상당히 있다. 예상되는 부작용과 폐단에 대해서는 충분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편법상속과 과잉진료 우려=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은 24일 국회 토론회 ‘원격의료 및 의료 영리화에 대한 긴급토론회’에서 “의료재단이 편법 상속의 통로로 활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비영리 의료법인에 자금을 출연하는 방식으로 대기업집단이 편법 상속을 시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공익법인인 의료법인에 출연한 돈은 상속·증여세를 면제받는다. 대기업이 면세 혜택을 받고 출연한 돈이 투자 명목으로 영리 자회사로 빠져나가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의료법인을 끼고 대기업 2세에게 편법 상속이 이뤄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영리 자회사와 인수·합병이 패키지로 허용되면서 ‘먹튀’ 가능성도 있다. 현재 의료법인은 인수·합병이 원천 금지돼 있다. 경영이 어려워지면 파산한 뒤 남은 자산은 국고에 환수된다. 향후 인수·합병이 허용된다 해도 투자자가 매각대금을 챙기는 것은 여전히 불법이다. 하지만 의료법인의 돈을 합법적으로 입출금할 ‘허브’로서 자회사가 설립되면 돈을 주고 병원을 사고파는 걸 막는 건 어려워진다. 흑자 병원의 수익을 자회사로 빼돌려 적자로 만든 뒤 팔거나 인수자가 자회사를 통해 우회적으로 매각대금을 건네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정형선 연세대 교수는 “의료법인을 유지할 마음이 없는 경우라면 자회사에 돈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법인을 정리하고 돈을 챙긴 뒤 빠져나갈 길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의료기기 구매·임대는 의료법인이 자회사 설립을 통해 진출이 허용된 대표적인 분야 중 하나다. A의료법인이 자회사 B로부터 컴퓨터단층촬영(CT)·자기공명영상(MRI) 등 고가 영상의료장비를 빌려 쓰고, A병원 의사 C는 자회사 B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보자. 과거에 영상검사 실적은 의사 C의 수입과 무관했지만 배당수입이 생긴 의사 C에게는 CT와 MRI를 더 많이 찍을 이유가 생긴다. 환자 가족의 숙박을 계열 호텔과 연계시키는 ‘수술 패키지’, 자회사의 마사지 운동 건강식품 등과 모법인 병원의 검진 치료 시술 등을 묶은 ‘의료회원권’ 같은 기상천외한 마케팅 기법도 등장할 수 있다.

“법인 돈의 흐름 투명 관리”=복지부 관계자는 의료계 지적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다방면에 안전장치를 마련했다”며 “그래도 안 된다는 건 ‘교통사고 날지 모르니 출근하지 말자’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복지부가 말하는 안전장치의 핵심은 돈의 흐름을 투명하게 관리하는 것이다. 모법인에서 자회사로 투자된 돈이 반드시 의료법인에 재투자되도록 의무화하고, 자회사가 진출 가능한 영역도 말썽의 소지가 있는 분야는 제외했다. 대표적인 것이 의약품이다. 개발만 허용하고 제조 유통 판매는 제외했다. 고질적인 리베이트 문제 때문이다. 모법인이 투자할 때도 순자산의 일정비율(예를 들어 30%)까지 투자할 수 있도록 한도를 정할 방침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자회사의 수익을 투명하게 관리하고 부당내부거래도 엄격하게 제한할 계획”이라며 “모법인이 자회사에 대해 보증을 서거나 이사를 겸직하는 행위도 모두 금해 의료법인과 자회사 사이에 철저한 방화벽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