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남호철] 드론이 택배 서비스 하는 시대
입력 2013-12-26 01:39
‘주파수를 교란하고 건물 지붕에 반사 유리조각들을 펼쳐 놓아라. 어떤 움직임도 하지 마라. 큰 나무 밑에 숨어라….’
알카에다 등 테러집단이 미군의 무인항공기(드론·drone)의 공습을 피하기 위해 운용해온 지침서의 일부 내용이다. 테러조직이 드론을 얼마나 무서워하는지, 미국이 테러 조직을 겨냥해 얼마나 많은 드론을 띄우는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게 해준다.
드론은 ‘무인항공기’라는 의미 외에 ‘꿀벌의 수컷’ ‘벌이 윙윙거리다’ 등의 뜻도 갖고 있다. UAV(unmanned aerial vehicle)라고도 불리지만 드론이 일반화됐다. 무인항공 조종사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는 먼 곳에서 컴퓨터로 조종하며 작전을 구사하기 때문에 효용은 더할 나위 없다.
무인항공기로 테러조직 공격
테러조직 공격에서 보여준 활약상은 일일이 꼽을 수 없을 정도다. 최근 사례로 케냐 나이로비 쇼핑몰 무장 테러를 일으키면서 알려진 소말리아 이슬람 무장단체 알 샤바브의 고위급 지도자 2명이 지난 10월 29일 차량으로 이동하다 드론의 폭격으로 숨졌다. 미국 해군 특수부대(네이비 실)의 급습 작전으로도 성공하지 못했던 일이다.
드론은 버락 오바마 정권에서 가장 잘 써먹는 병기로 부각됐다. 이라크 전쟁에서 진가를 발휘한 뒤 탈레반과 알카에다 소탕전에 집중 투입됐다. 예멘의 알카에다 공격과 리비아 카다피 축출 작전에도 동원됐다. 오사마 빈 라덴을 찾아내 사살할 때 드론의 정찰 업무가 큰 기여를 한 것도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걱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드론 공격으로 민간인 사상자가 늘면서 비난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다. 통신장애에 따른 사고는 차치하더라도 적군과 아군을, 민간인과 테러조직원을 구별하지 못하는 청맹과니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이 드론의 공격으로 한꺼번에 몰살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최근 드론이 살상 대신 이용후생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도도 있었다. 세계 최대 온라인 소매업체 아마존이 이르면 2015년 소형 무인기 ‘옥토콥터’를 이용해 소규모 물품을 택배 서비스하겠다고 했다. 전기 모터로 구동되는 이 무인기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활용, 주문 처리센터에서 반경 16㎞까지 택배 서비스를 담당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이런 계획이 성사되기까지는 무인기 운행 안전기술 향상과 당국의 허용 등 규제체계 정립이 전제돼야 한다. 미국 연방항공청(FAA)이 최근 발표한 소형 무인기 규제 계획에 관한 문서는 사람이 직접 조종하는 대신 자동 항법으로 운행되는 무인기 사용을 금지할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의 편의 제공하길
아직은 새로운 규정과 상용 무인기 인가 절차 등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돼 있지 않지만 FAA조차 2030년이 되면 많게는 3만대의 무인기가 미국 상공을 휘젓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렇게 되면 대평원에서의 농작물 씨앗 살포나 발전소, 송유관, 전력선 등 핵심 기간설비에 대한 감시나 안전점검 업무 등이 모두 사람의 손을 떠나 무인기 몫이 될 게 자명하다. 최근 워싱턴포스트(WP) 블로그에는 무더운 여름날 야구장이나 야외 공연장에 앉아 스마트폰의 버튼을 누르면 무인기가 몇 분 내에 시원한 맥주를 배달해 주는 날이 도래할 것이라는 글이 실리기도 했다.
침을 쏘는 벌에서 달콤한 꿀을 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살상 공격에 사용되는 드론에서 일상생활의 편의를 제공받는 게 바람직하다. 하늘에서 윙윙거리는 ‘벌’ 소리가 날 때 공포에 마음 졸일 것이 아니라 기다리던 물품이 배달되는 기쁨을 누리도록 말이다.
남호철 국제부장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