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최진석] 국민을 위한 철도! 철도를 위한 국민?
입력 2013-12-26 01:29
“KTX 자회사 설립은 공급자 아닌 이용자 위한 철도 서비스 유도하기 위한 것”
철도 파업이 보름을 넘기면서 많은 국민들이 이제 생활 속에서 불편을 경험하고 있다. 그런데 파업의 원인이란 것이 수서발 KTX 자회사를 설립한다는 결정이라고 한다. 노조는 이를 ‘철도민영화’로 규정하고 이를 철회하지 않는 한 파업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수서발 KTX 자회사는 민영기업일까?
수서발 KTX 자회사는 공공기관인 철도공사가 지분의 41%를 투자하도록 돼 있으며 나머지 지분은 국민연금이 보유할 예정이다. 공공참여 지분율 30%는 공공기관 지정의 기준으로 ‘공공기관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수서발 KTX 자회사는 공공기관으로 정부의 직접적인 관리를 받게 된다. 다시 말해 철도공사의 41% 지분 참여로 수서발 KTX 자회사는 민영기업으로 분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정부는 민간에 지분 매각은 없을 것이며, 이를 어기는 경우 면허를 취소하겠다는 구체적인 규정의 신설도 거듭 약속했다. 그렇다면 더더욱 KTX 자회사 설립을 철도민영화로 운운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김대중정부 시절 시작된 철도 구조개혁 계획수립 과정에서 철도사업의 민간운영은 검토되기 시작했다. 원인은 철도사업이 계속 적자를 낸다는 것이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효율성에 입각한 경영방식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번번이 ‘철도민영화’란 무시무시한 주장에 의해 무산되고 만다. 노조는 기반시설의 상징인 철도를 민간에 매각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국민철도를 지키겠노라는 주장을 펴왔고 나름의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철도민영화란 철도를 민간에 매각하는 것, 즉 선로를 민간에 매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적으로 일본과 영국 말고는 유례가 없다. 우리나라는 민간자본이 투자한 철도의 경우에도 투자금을 회수한 이후(30년) 해당 철도의 소유권은 정부로 귀속하도록 하고 있다. 다시 말해 ‘민간이 보유하는 철도’, 즉 민영화된 철도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 정부의 한결 같은 입장이다.
현재 정부의 철도정책의 핵심은 철도운영의 효율성을 높여 공급자 위주의 서비스가 아닌 이용자를 위한 철도 서비스를 이끌어 내겠다는 것이다. 이번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 역시 철도공사가 조직논리에 근거한 운영으로 이용자보다 공급자 중심적 사고를 벗어나기 힘들다는 구조적 문제를 우회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봐야 한다. 조직논리에서 자유로워지면 이용자가 많은 노선과 시간대에 서비스를 집중하게 되고, 이는 모회사인 철도공사에도 자극이 돼 유사한 형태의 서비스 개선을 유도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듯 수서발 KTX 자회사는 이용자, 즉 국민을 위한 철도를 만들자는 목적 아래 추진된 정책으로 봐야 한다.
투명 유리컵에 반쯤 채워진 물은 거의 빈 것일까? 아니면 반이나 남아 있는 것일까? 이 표현은 노조와 정부의 민영화에 대한 시각차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효율성에 입각해서 철도사업을 조정하고자 하는 정부에 대해 효율성 추구란 민간기업의 경영방식이니 민영화라고 노조는 주장하고 있다. 공기업이 일반 기업처럼 효율적으로 운영된다면, 아니 더 효과적으로 운영되는 것을 왜 노조는 반대하는 것일까? 혹시 국민을 위한 철도 운운하면서 업무량 증가를 피하려는 의도는 아닐까? 그렇다면 그들은 철도를 위해 국민을 이용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생각인지 묻고 싶다.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이 논리적 정당성을 가졌음에도 여론은 긍정적이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초기부터 직위해제 등 노조에 대한 강경대응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책임과 자부심에 근거해 정책의 정당성과 노조 논리의 허구성을 국민들과 공유하려는 노력이 더욱 필요했다. 이제라도 정부 당국은 정책의 대상을 특정 이해집단으로 국한하지 말고, 국민에게 직접 다가가 이해를 구하는 자세를 가져주길 바란다.
최진석 한국교통연구원 철도정책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