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의료계 파업 다가오는데 정부는 뭐하고 있나

입력 2013-12-26 01:47

기득권 반발 넘어야 한국 경제 도약할 수 있다

파업은 사용자의 부당행위에 맞서 약자인 노동자가 쓸 수 있는 최후의 보루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자신들의 철밥통을 지키고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도구로 변질된 지 오래다. 역대 정권마다 기득권 세력이 ‘떼법’으로 들고 일어나면 굴복해 요구를 들어준 탓이다. 1인당 평균 연봉이 7000만원에 달하는 코레일 노조는 17조6000억원 빚더미에 앉아서도 경쟁체제를 도입하면 밥그릇이 줄어들까봐 국민의 발을 담보로 18일째 파업 중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의료법인의 자회사 설립과 원격진료 허용에 반대해 다음달 총파업에 들어가겠다고 예고했다.

철도파업만으로도 국민들의 불편과 산업계 피해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한 의료계 파업까지 겹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도 정부는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반대 목소리만 들린다. 일부 의료계와 시민단체는 원격진료와 의료법인의 자회사 설립이 허용되면 동네의원들이 대거 파산하고 대형병원들만 배를 불리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대형병원들은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지금의 의료비가 10배나 껑충 뛰게 될 것이란 괴담도 돌고 있다. 10년째 똑같은 레퍼토리다.

우리나라는 수출 제조업에 의존하는 기형적 산업구조로 성장의 한계에 부닥쳐 있다. 지속성장을 위해 서비스산업 육성을 더 이상 늦춰선 안 된다. 2000년대 초부터 서비스산업 육성을 외쳤지만 번번이 이해집단의 반발에 막혀 좌절됐다. 대표적인 분야가 의료다. 병원에 외부 투자를 끌어들이고 서비스 질을 높여 해외로 나가는 의료 수요를 국내로 돌리고, 외국에서도 우리나라 병원을 찾아오도록 의료산업 규제를 풀겠다고 했지만 철옹성 같은 반대에 부닥쳐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이번에 허용한 것은 역대 정부가 추진했던 영리병원도 아니다. 병원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해 대학병원에만 허용하던 자회사 설립을 확대한 것이다. 삼성의료원 현대아산병원 등 대기업이 운영하는 병원은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이어서 사실상 제외된다. 오히려 영리병원에서 후퇴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판인데 의료계는 의료 민영화의 전 단계라고 우기고 있다.

우리나라가 10년째 손발이 묶여 있는 동안 싱가포르나 태국은 해외 환자를 싹쓸이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의료산업이 연평균 7∼10%씩 성장하고 있다. 중국마저 영리병원을 허용하고 의료법인에 대규모 민간 투자를 허용했다.

철도파업과 의료산업 규제 완화는 박근혜정부의 시험대다. 철도개혁 첫 단추를 잘 꿰야 500조원 빚더미로 신음하는 방만한 공기업 대수술에 성공할 수 있다. 서비스산업 선진화를 통한 도약도 의료산업 개혁이 시발점이다. 이번에도 주저앉는다면 한국경제의 미래는 없다. 파업 시한폭탄은 다가오는데 의료계와 대화하고 설득하려는 정부 모습이 안 보이는 것은 우려스럽다. 강 대 강으로 치닫고 있는 철도파업 전철을 되풀이할 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