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중 목사의 시편] 말하지 않으면 몰라요
입력 2013-12-26 01:33
지난 23일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전국 기혼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저출산 인식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는데, 부부의 하루 평균 대화시간은 ‘30분∼1시간’이 32.9%, ‘10∼30분’이 29.8%, ‘10분 미만’이 8.6%였다. 결국 70%가 넘는 부부들이 하루에 1시간도 대화하지 않고 사는 셈이다. 그나마 대화의 주제도 자녀(40%)와 가정일(28.2%)에 편중돼 있었고, 정작 부부 사이의 이야기는 14.7%에 불과했다. 대화가 이뤄지는 시간도 대화에 집중하기 힘든 식사시간(58.8%)인 경우가 많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화할 때 즐거우며 소통이 잘 이뤄진다’고 응답한 부부가 58.3%에 이른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비율도 연령이 높아질수록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그런데 이 설문조사 내용 중 가장 답답한 대목은 50대 이상이 되면 절반 이상의 부부가 도무지 애정표현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물론 동양의 미덕이 한 CF광고의 카피처럼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이지만, 이미 소통장애를 호소하는 부부들 사이에서 사랑의 감정마저 표현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감정적 별거’ 상태라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이 고백하는 하나님의 이미지 중에 하나는 ‘말씀하시는 분’이다. 창세기 1장의 ‘태초’부터 말씀하셨던 하나님께서는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말씀하신다. 하지만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명령하거나 독백하는 분이 아니다. 태초의 말씀 자체가 교제와 대화를 위해 자신과는 다른 상대를 만들기 위한 말씀이었고, 태초의 인간들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명령과 지시만 내리는 분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언제나 세상, 특히 인간과의 대화를 원하셨던 분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은 아담이 범죄한 후 그에게 주셨던 첫 말씀, “네가 어디 있느냐”(창 3:9)에서 잘 드러난다. 하나님께서 정말 아담이 어디 숨었는지 모르셔서 그런 질문을 하신 게 아니다. 이 질문은 아담이 하나님께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즉,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자신의 범죄행위를 자백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하지만 아담은 어처구니없는 핑계만 대다가 결국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성탄절은 지존하신 하나님께서 낮고 낮은 인간 세상에, 타락하고 범죄해 하나님에게 등 돌린 어두움의 세상에 성육신(成肉身)의 고통을 무릅쓰고 찾아오셔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혀 있었던 대화의 문을 다시 열어놓으신 사건이다. 그리고 ‘육신이 되신 하나님’께서는 그 대화의 문을 여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를 내 생명을 다해 사랑한다.” 이 성탄의 계절에 우리 사회 곳곳은 불통(不通)의 수렁에 빠져 있다. 서로를 향해 비난과 모욕을 쏟아붓는 것은 예사이고, 대규모 물리적 충돌도 불사하고 있다. 서로를 소멸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는 극단적인 증오현상까지 발생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사랑의 대화’가 부족해서 생기는 현상이다. 이 기쁜 성탄의 계절에 오랜만에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기나긴 사랑의 대화를 나눠봄이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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