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임만호 (2) 中 3때 기독시보에 ‘주여 어서 오소서’ 신앙시 당선

입력 2013-12-26 01:32


신광국민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 한국전쟁이 지난 지 1년 후인 늦봄 5월쯤이다. 토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고 동네 친구 김남열과 둘이서 아카시아 꽃이 만개한 노루재를 넘어오면서 고갯마루에 앉아 쉬었다.

아카시아 꽃을 따 단물을 빨아먹으며 김남열이 나에게 저 하늘에 구름이 보이느냐고 물었다. 무심코 바라보니 하얗고 큰 목화솜 같은 구름이 한 점 두둥실 떠 있었다. 구름이 떠 있구나 하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친구는 내 대답을 놓칠세라 ‘너 노래하나 가르쳐 줄까’ 하면서 나의 반응을 기다렸다. 어려서도 지금도 노래에 대해서 큰 흥미가 없었던 터라 불러보라고 했다.

친구는 노래를 썩 잘 부르는 친구였다. 그 친구는 순교하신 손양원 목사님의 노래라면서 부르기 시작했다. “낮에나 밤에나 눈물 흐르며 내 주님 오시기를 고대합니다. 저 하늘 이상한 구름만 떠도 내 주님 오시기만 고대합니다.” 이 노래는 어린 나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예수님이 어떻게 구름을 타고 오시느냐고 물어보니 “우리 주일학교에서 예수님이 오실 때 구름 타고 오신다고 배웠어”라고 하는 것이다. 이때 내 작은 가슴이 뚫리는 듯하였으며 오월의 고개 아래 푸른 들과 맑게 흐르는 개천, 파란 하늘의 흰 구름 하나는 나를 설레게 하였다.

나도 손양원 목사님처럼 은혜로운 노랫말을 써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어려운 생활 때문에 노트를 사서 글을 쓰는 것이 힘들어 다 쓴 노트의 표지 뒷면이나 구제물품 포장 봉투를 모아 글을 쓰기도 했다.

중학교 3학년 때 ‘기독시보’라는 주간 신문에서 신앙시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봤다. 시 공부를 해본 일도 없고 배울 만한 것은 국어시간에 가끔 시에 대해서 들어본 것밖에 없던 나는 ‘주여 어서오소서’라는 제목의 시 한 편을 정성 들여 써서 응모했다.

신문사에서는 아무 소식도 없었다. 시골 중학교 3학년 학생의 작품이 감히 당선이 되겠는가. 기간도 약 3개월이 지났으니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빨간 색연필로 표시된 기독시보 당선발표가 도착했다. 뛸 듯이 기뻐 다음날 국어과 김신철 선생님께 보여드렸더니 선생님도 기뻐하시면서 중·고등학생 전체 월요일 애국조회 시간에 이 시를 읽으라고 하셨다. 전교생과 선생님들 앞에서 시를 발표한 나는 칭찬을 받았다. 이후 김 선생님은 문학에 소질이 있어 보이는 학생 대여섯 명을 선정해 자기가 운영하는 함평문화원 사무실에 불러 문학공부를 시켜주시고 우리들의 작품집도 만들어주셨다.

함평농고에 진학해서는 2학년 때 학생회 문예부장을 맡아 활동하면서 졸업식 때 재학생 대표로 송사를 써서 낭독하고 졸업식 때는 심금을 울리는 답사로 눈물을 자아내기도 하였다. 고교 3학년 때 학교 교지를 맡아 선생님과 문예부원들이 편집해 광주 인쇄소에서 2주간에 걸쳐 문예지 만드는 일도 했다.

고교 1학년 때의 일이다. 고향 신광면 가덕리에서 함평읍까지는 약 3시간 거리여서 왕복 6시간을 걸어 학교에 다녀야 했다. 어린 우리들이 힘들게 학교를 다니는 것을 보신 목사님께서 안타까워하시고 함평 중앙교회 김덕수 목사님의 소개로 우리 친구들은 함평 자광원에서 어린 고아들을 돌보며 고등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자광원 원장님은 홍정길 남서울은혜교회 원로목사님의 부친이자 함평 중앙교회 장로님이신 홍순호 장로님이셨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