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권 두바이 “메리 크리스마스”… 축제 분위기
입력 2013-12-25 03:42
중동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의 영국인 벤 엘리엇-스콧은 크리스마스 며칠 전부터 겨울 분위기를 내는 작업으로 바빴다. 인공 눈사람을 하얗게 칠하고 나무에 인공 눈을 뿌려 진짜 눈이 소복이 쌓인 것처럼 만들어야 했다. 대부분 두바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게 주문받은 일이다.
지금 두바이는 20도 안팎으로 눈 내리는 날씨와 거리가 멀기 때문에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려면 수작업이 필요하다. 스콧이 근무하는 ‘데저트 스노’(사막의 눈)는 영화 제작 등에 쓰이는 인공 눈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회사다.
그는 “한 해 중 가장 바쁜 시기”라며 “두바이에서 크리스마스는 우리나라(영국)에서보다 더 진지하게 치러진다”고 23일(현지시간) AP통신에 말했다. 해외 거주자처럼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현지인 가족이 많다고 그는 덧붙였다. 외국인만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두바이에는 쇼핑센터와 동네 곳곳에 크리스마스트리가 들어섰다. 고급 호텔들은 앞 다퉈 값비싼 휴일 저녁식사를 내놓고 있다. 이슬람 국가가 예수 생일인 크리스마스를 맞아 축제 분위기로 들뜬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AP통신은 두바이가 보수 이슬람권에선 생각지도 않을 방식으로 크리스마스 문화를 점점 더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로 두 번째를 맞은 야외 크리스마스 행사는 최근 3일간 2만7000명이 방문하면서 지난해 기록을 깼다. 어린이 합창단이 캐럴을 부르는 행사장에는 아이들이 눈싸움을 할 수 있는 공간과 동화 속을 연상시키는 집들이 갖춰져 있다. 여기가 이슬람 국가라는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인 셈이다.
이런 모습은 UAE의 7개 토후국 중 하나인 두바이가 이슬람권을 넘어 국제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금융과 무역 중심지 역할을 하며 ‘중동의 뉴욕’으로 불린 지는 이미 오래됐다. 중동에서 사업을 하려는 각국 기업은 이 나라로 몰려온다. 두바이는 전 세계로 연결되는 나라라는 점을 강조하며 지난달 세계 엑스포 개최 권한을 따냈다. 중동 국가로선 처음이다.
그렇다고 두바이가 이슬람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잃은 것은 아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한창인 상황에서도 이슬람 사원에선 하루 5차례 기도시간을 알리고 현지인들은 검소한 복장으로 절제된 삶을 유지한다. 서구 문화와 이슬람 전통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두바이 주재 영국 대사관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중동의 엄격한 음주·품행 관련법을 자국민에게 상기시키며 물의를 빚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했다.
UAE 샤르자대학 이슬람학과 이스마엘 알-이사위 교수는 “두바이는 이제 모든 종류의 종교가 공존하는 국제 중심지가 됐다”며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명절을 지낼 수 있느냐는 각자에게 달렸다”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