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거침없는 반대표… 국민연금, 기업 감시자로 떴다

입력 2013-12-25 02:34


투자기업 의결권 분석해보니…

국민연금공단(국민연금)의 반대 의결권 행사 이유를 자세히 살펴보면 대기업의 구태 경영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주주가치를 훼손한 이력이 있는 관계자를 임원으로 선임하려는 경우, 주주보다 경영진의 이익에 치중하는 경우 등에 대해 국민연금은 소신 있는 반대의견을 표출하고 있다.

다만 안건이 실제 부결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다는 한계는 여전하다. 시민사회에서는 국민연금이 반대 의결권뿐 아니라 주주권까지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큰손’의 거침없는 행보에 재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까칠한 거대 주주=지난 7월 15일 대우건설의 임시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은 2호 의안인 임원 퇴직금 지급규정 일부 변경의 건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다. “과도한 퇴직금 지급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였다. 국민연금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과도한 임원 퇴직금에 원칙적으로 반대한다’는 세부기준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연금의 보상 관련 의결권 행사지침 세부기준에는 “‘황금 낙하산(Golden Parachute)’ 계약을 반대하라”는 문구도 보인다.

국민연금은 기업 회장이 계열사의 사내이사를 겸직하려 할 때에도 ‘과도한 겸임’을 꼬박꼬박 지적한다. 지난해 4월 개정된 상법은 이사와 감사가 상장사·비상장사를 불문하고 3곳까지만 겸직이 가능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유수의 대기업 가운데 이 반대 의결권을 피한 곳은 드물다. 국민연금은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증권, 현대상선 주주총회에서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의 이사 선임을 반대했다.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은 현대모비스에서, CJ그룹 이재현 회장은 CJ와 CJ제일제당에서,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은 롯데쇼핑에서 국민연금의 이사 선임 반대표를 얻었다.

국민연금의 ‘까칠함’은 국내 대기업에 그치지 않는다. 애플 등 해외 법인들에 대해서도 해외 주식 의결권 행사지침에 따라 적극적으로 반대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지난 2월 애플의 주주총회에는 임원 보상 승인 안건이 올라왔지만, 국민연금은 “성과에 연동된 보상조건이 기재돼 있지 않고, 실질적으로 경영 성과와의 연계성이 떨어져 보인다”며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다.

지난 10월 31일에는 세계 2위 소프트웨어 회사인 오라클코퍼레이션에 대해 11건의 안건 가운데 6건의 반대의견을 내며 나태한 경영 행태를 지적했다. “독립적인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며 사내·외 임원 선임에 모두 반대했고,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 승인 안건에 대해서는 “목표치가 아마존, 구글, 시스코 등 동종 기업군보다 상당히 높고, 전년 주총에도 기각된 안건임에도 다시 상정됐다”며 반대했다.

◇한계는 여전=여타 연기금과 비교해도 국민연금의 반대 의결권 행사는 눈에 띄는 수준이다. 양대 연기금인 사학연금의 경우 올해 반대 의결권 행사 내역이 전무하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철저히 주주의 입장에서 원칙에 따라 소신 있는 의결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러한 국민연금의 소신이 사회적 영향력이 큰 대기업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비판은 여전하다. 실제로 올해 국민연금이 행사한 반대 의결권으로 해당 안건이 부결된 숫자는 4건에 불과하다. 그나마 중소기업들의 사례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이지수 변호사는 “기업 총수와 특수관계인이 갖는 비중이 보통 30% 정도”라며 “국민연금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이 변호사는 “국민연금이 문제가 있는 기업의 이사회에 소송을 제기하는 수준까지 ‘주주권’을 강화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