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훈, 생애 첫 피아노 독주 음반 발매… 할아버지 마에스트로, 손녀들을 위해 연주하다

입력 2013-12-25 02:43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마에스트로 정명훈(60)은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형제 대부분이 음악을 하는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음악과 친해졌다. 4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운 그는 연주 실력이 뛰어나 ‘신동 피아니스트’로 불렸다. 1974년 러시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피아노 부문 2위로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그러던 그는 79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부지휘자를 맡은 걸 계기로 지휘자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피아니스트보다는 지휘자로 더 유명한 그가 생애 첫 피아노 독주 음반을 냈다. 34년 만에 지휘봉을 잠시 내려놓고 피아노 앞에 앉아 어린 두 손녀 등 가족들을 위해 10곡을 직접 선곡하고 연주했다. 음반은 독일의 명장 만프레드 아이허(70)가 이끄는 레이블 ECM에서 발매됐다. ECM의 첫 한국인 프로듀서로 활동하는 둘째아들 정선씨의 제안으로 제작됐다.

24일 서울 대치동 마리아 칼라스 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정명훈은 “피아노라는 악기는 음악적으로 아직도 나와 제일 친하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라며 “손녀 둘이 생겼는데 ‘그 아이들을 위해 음반을 하나 만들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손녀들을 염두에 두고 녹음한 음반인 만큼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익숙한 멜로디의 소품 위주로 선곡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특별히 재미있을 곡들이고 아이들이 듣자마자 무슨 곡인지 알 만한 것들도 있다”며 모차르트의 ‘작은 별 변주곡’을 즉석에서 연주해 보였다. 음반에 수록된 드뷔시의 ‘달빛’은 유달리 음악을 좋아하는 둘째손녀 루아(Lua·달)에게 선물하는 곡이다. “루아가 한 살도 되기 전에 연주실황 영상을 반복해서 보고 음반도 듣고 또 들었어요. 두 달 전에는 베토벤 교향곡 5번 영상을 보더니 ‘빠빠빠 뿡, 빠빠빠 뿡’ 하고 리듬을 맞추더라고요.”

큰아들(정민) 결혼식에서 연주했던 슈베르트의 즉흥곡 G장조, 39년 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연주했던 ‘가을노래’ 등 그의 삶에서 중요한 순간에 함께했던 의미 있는 곡들도 수록됐다. 쇼팽의 야상곡 c단조는 누나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에게 바치는 곡이다. 그는 “누나와 여러 번 같이 연주했던 곡”이라며 “누나는 평생 만나본 음악가 중에서 가장 열정을 가진 특별한 사람이고 어릴 때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지휘자와 피아니스트로서가 아니라 아이들의 할아버지로서 피아노 앞에 앉으니 부담감 없이 즐거웠다고 한다. “피아니스트로 연주할 땐 한 가지가 마음에 안 들면 그날은 다 실패라고 생각할 정도로 고심도 많았는데 이번 피아노 연주는 무척 재미있었어요. 가족들과의 추억 등 마음에서 우러나는 풍경을 음악에 담았기 때문이지요.”

그는 이번 음반이 정식 피아노 앨범은 아니라고 밝혔다. “그저 손녀를 위해, 아이들을 위해,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했습니다. 진짜 피아니스트로서 음반 작업도 해보려고 해요. 기회가 되면 연습을 제대로 해서 쇼팽 음반을 하나 낼까 합니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