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봐주기 조사는 잊어라… 금감원, ‘암행어사 특검’ 띄운다
입력 2013-12-25 01:31
금융 당국이 금융권에 검사 일정을 미리 일러주던 관행을 최소화하고 ‘기동타격대’식 특별 점검을 활성화할 방침이다. 고객 정보 유출, 투자자금 횡령, 주문 실수로 인한 파산 등 내부통제 미비로 크고 작은 사고가 계속되는 데 따른 고육책이다. 강화된 금융 당국의 검사 제고 방안에 따라 지난 정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이른바 ‘4대 천왕’들도 사정권에 들게 됐다.
◇“암행어사 출두요”=2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앞으로 금감원은 4명 내외로 구성된 ‘내부통제 전담검사반’을 새로 만들어 운영하기로 했다. 이 전담검사반은 권역마다 정예 검사인력을 선발해 전체 금융회사를 순회하며 상시적인 ‘암행감찰’을 실시할 계획이다. 특히 이상 징후가 보이는 저축은행에 대해서는 베테랑 검사역을 포함한 ‘상시기동점검반’을 구성해 불시 점검을 하기로 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그동안 검사의 효율성 차원에서 사전 예고를 한 뒤 검사를 하다 보니 금융 사고를 일으킨 금융회사가 사고성 사안을 은폐하는 등 대비를 할 수 있었다”며 “금감원이 충분히 사건에 접근하지 못하는 측면이 나타나 이러한 제고 방안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그간 소수의 특별검사를 제외하면 건전성 입증자료 준비 등을 위해 적어도 2∼3일 전에는 해당 금융회사에 검사 일정을 예고해 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금융회사 스스로 내부통제 확립의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고 개연성이 높은 점포들을 대상으로 불시 점검을 예고한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업계로서는 스트레스가 많겠지만 대형 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금융 당국의 감독 이전에 자정능력이 발휘돼야 한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금감원은 최근 국실장 연석회의를 열고 대형 금융 사고가 발생하면 즉시 현장검사에 착수하는 것을 원칙으로 세웠다. 최근 들어 시중은행의 대표 격인 KB국민은행에서 잇따른 비리 사실이 적발되고, 한맥투자증권에서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최수현 금감원장 역시 금융권 전반의 반성을 강하게 촉구했었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내부통제가 취약하다고 파악한 금융회사에 대해서는 양해각서(MOU)를 적극 체결하고, 분기별로 MOU 이행 현황을 점검하기로 했다. 또 금융위원회와 협의해 내부통제가 부실한 최고경영자(CEO)와 감사에 대한 제재 근거를 금융 관련 법령에 명시할 계획이다.
비자금 조성 및 유출, 현지 직원의 자살 등 의혹이 커지고 있는 KB국민은행 도쿄지점과 관련한 재발 방지책도 마련됐다. 리스크가 불거진 일본 내 국내 은행 점포들을 중심으로 현장검사를 실시해 대출 취급의 적정성 등을 집중 점검한다는 것이다. 이 외에 금융회사 준법감시 부서에는 우수 인력을 충원토록 유도하고, 내부고발 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해 포상금도 대폭 상향하기로 했다.
◇‘4대 천왕’도 사정권=금융사고와 기업 구조조정에서 선제적 대응을 천명한 금감원은 KDB산업은행까지도 정밀 점검할 전망이다. 금감원은 산업은행이 대주주로 있는 대우건설에 대해 최근 회계처리 기준 위반 혐의를 포착하고 통상 절차보다 빠르게 정밀 감리에 착수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감리가 끝나고 대우건설 문제가 확정돼야 그 이후 내용을 판단할 것”이라면서도 “대우건설과 산업은행은 재무제표상 연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에 대한 검사 시사에 대해 금융권은 말이 많다. 이명박정부 시절 이 전 대통령과의 친분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산은금융지주 강만수 전 회장까지 금감원의 사정권에 들어왔다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전(前)정권 부실 청산 작업’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금감원은 올해 ISS정보 유출과 관련해 KB금융지주의 어윤대 전 회장을 제재심의위원회에 회부했고, 어 전 회장은 “그간 정부 등에 헌신한 점을 감안해 선처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 외 금감원은 하나금융지주 김승유 전 회장에 대해서는 미술품 수집 및 퇴직 후 보수 등을 문제 삼았다. 우리금융지주 이팔성 전 회장에 대해서는 파이시티 신탁상품 불완전판매 여부를 따지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원칙에 따라 검사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을 아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