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고객 ‘뻥 연비’에 부글부글 … “정부가 바로잡아야 ”
입력 2013-12-25 02:33
현대·기아차 ‘연비 과장’ 미국서 보상 한다는데…
현대·기아자동차가 미국에서 연비 과장과 관련, 3억9500만 달러(약 4187억원)를 소비자에게 지급하겠다고 밝히자 국내 승용차 소유자들이 ‘우리는 보상이 없느냐’며 들썩이고 있다. 하지만 현대·기아차가 국내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는 근거가 필요한 데다 국내에는 집단소송 제도가 없어 현실적으로 보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이른바 ‘뻥 연비’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 집단소송제의 힘=미국에서 현대·기아차 연비문제가 불거진 건 미국 정부기관인 환경보호청(EPA)의 발표 때문이었다. 일부 소비자의 고발을 받은 EPA는 지난해 11월 2일 현대·기아차 13개 차종의 연비가 부풀려졌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현대·기아차가 현지 주요 언론에 사과 광고를 게재하고 고객 보상 프로그램을 제시했지만 소비자의 민사 소송이 잇따랐다.
현대·기아차 미국 지사의 23일(현지시간) 발표는 해당 소송에서 현대·기아차가 소비자와 합의했음을 뜻한다. 이 소송이 2011∼2013년 13개 차종을 구매한 약 90만명에게 효력이 있는 이유는 소송 결과가 다른 소비자나 피해자에게 똑같이 영향을 미치는 미국의 집단소송제도 때문이다. 국내서도 현대·기아차를 상대로 한 연비 관련 소송이 진행 중이지만 소비자가 승소한다고 해도 전체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현대차 상대 연비 소송은 현재 1심에서 소비자가 패소했고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재측정이 중요”=현대·기아차는 미국과 우리나라의 연비 소송은 경우가 다르다는 입장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24일 “미국에서도 규정을 어긴 게 아니라 절차상 해석의 오류가 있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주어진 범위 안에서 연비가 가장 잘 나오는 조건을 찾아 측정한 연비를 제시했는데 미 EPA는 이를 문제로 봤다는 얘기다. 자동차 전문가들도 “국내에서 규정을 어겼다고 보기 힘들어 성격이 다른 문제”라고 말한다.
반면 국내 소송 당사자들은 두 사안이 본질적으로 같다는 입장이다. 법무법인 예율의 김웅 변호사는 “소비자가 표시 연비를 믿었는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면 업체에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자동차전문가들은 각 개인이나 소비자단체가 연비를 측정해 소송의 근거로 제시하기 어려운 만큼 정부가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공학과 교수는 “미국은 EPA와 같은 정부기관이 소비자 입장에서 연비를 재측정해준다”면서 “국내에서 이 문제를 바로잡으려면 정부가 나서 업체들이 연비 측정을 얼마나 허술하게 했는지 입증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