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따뜻한 성탄 전야… ‘몰래 산타’ 오셨네

입력 2013-12-25 03:33


봉사자 1200명 소외 아동 1004명 찾아가 깜짝 선물

“산타할아버지! 산타할아버지!”

어두운 골목길을 울리는 외침 소리에 50m 떨어진 골목 모퉁이에 숨어있던 민경환(24)씨가 산타복장에 빨간 선물주머니를 어깨에 메고 나타났다. 졸린 표정이었던 최세림(11)군의 표정이 갑자기 밝아졌다. 최군은 “가짜 같다”며 산타의 가짜수염을 잡아당겼다. 둘러선 사람들 사이로 웃음이 터졌다. 정씨가 미리 준비해간 음악에 맞춰 “울면 안돼”를 부르자 최군은 박수를 치며 따라 불렀다. “파워레인저 총이었으면 좋겠어요.” 선물을 받아든 최군의 천진한 말에 골목길에는 다시 웃음이 번졌다.

최군은 난치성 백혈병을 앓고 있다. 화원을 운영하는 아버지(49)는 기초생활수급자다. 이날 등장한 산타클로스는 한국청소년재단이 서울지역 저소득층 아이들을 대상으로 준비한 ‘2013 시즌8 사랑의 몰래산타 대작전’ 이벤트의 일환이다.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모두 1200명의 산타클로스가 1004명의 아이들을 찾아갔다.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오후 6시 서울 휘경동 최군의 집에도 영하 2도의 날씨를 뚫고 ‘몰래산타’ 8명이 나타났다.

몰래산타들은 2달 전부터 행사를 준비했다. 율동을 만들어 연습하고 풍선으로 토끼를 만드는 법도 배웠다. 몰래산타로 나선 신찬영(24)씨는 동전 마술도 배웠다. 이들의 노력에 보답이라도 하듯 최군은 활짝 웃으며 산타들을 반겼다. 최군의 어머니 조상희(45)씨는 “세림이에게 잊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 것 같다”며 “세림이가 기운을 차려 얼른 나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귄 지 한 달된 방주용(23)·박경민(20·여) 커플은 연애를 시작한 뒤 처음 맞는 성탄전야를 뜻깊게 보내기 위해 경희대학교 학생들이 준비한 ‘경희 사랑의 몰래산타 페스티벌’에 지원했다.

이들이 처음 찾은 곳은 서울 이문동의 한 집 앞. 누나 유진이(5)·동생 서진이(3·이상 가명) 남매가 중국인 어머니와 함께 사는 곳이다. 아이들은 오후 6시쯤 집밖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자 현관문을 활짝 열었다. “메리크리스마스”라고 외치는 산타클로스를 보고 놀란 것도 잠시. 산타와 루돌프들이 불러주는 캐럴 ‘창밖을 보라’를 들으며 대문 밖까지 걸어 나왔다.

루돌프로 분한 대학생들은 두 명씩 짝을 지어 자신들을 ‘밥 잘 먹는 루돌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루돌프’ ‘부모님 말씀 잘 듣는 루돌프’라고 소개했다. 산타는 빨간 가방에서 꾸러미를 꺼내 아이들에게 건넸다. 남매가 원하는 선물이 무엇인지 어머니에게 미리 듣고 준비해온 선물이었다. 서진이는 선물을 받자마자 포장부터 뜯더니 장난감 로봇을 발견하곤 이내 세상을 다 얻은 표정이었다. 잠시도 로봇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침착해 보이는 누나 유진이도 선물이 무엇인지 궁금한 마음만은 감추지 못했다.

방씨는 “선물은 우리가 줬지만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행복하다”며 “몰래산타 행사에 참여하길 정말 잘했다. 내년에도 꼭 다시 참가하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 경희대 몰래산타 행사에는 자원봉사 학생 300여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31개조로 나뉘어 서울 동대문구 다문화·소외 가정 100여 곳을 찾아가 아이들에게 선물을 전달했다.

박세환 박요진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