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민연금, 투자기업 의결권행사 깐깐해져… 주총안건 12% 반대표 던졌다
입력 2013-12-25 02:27
올 들어 국민연금공단(국민연금)의 ‘재벌 감시자’ 역할이 뚜렷하게 강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재벌 기업들이 주주총회에 내놓은 각종 안건들에 대해 적지 않은 반대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재계의 반발이 거세지만 국민연금은 “주주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철저히 분석할 것”이라는 태도를 굽히지 않는다.
국민일보가 24일 국민연금이 올 들어 지난 20일까지 554개사(중복 포함)의 주주총회에서 행사한 의결권 찬반 내역을 전수조사한 결과 국민연금은 총 2493건(기권 1건 포함)의 안건 중 298건(11.95%)에 대해 반대표를 던졌다. 국민연금의 반대 의결권 행사 비중은 2011년 7.03% 수준이었지만 올해 12%에 육박할 정도로 높아졌다.
지난해에는 반대 비중이 17%로 높았지만, 이는 상법 개정과 관련한 일시적 현상이었다. 지난해 4월의 개정 상법은 이사의 책임 감면, 재무제표의 승인, 배당 결정 등을 이사회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확대된 이사회 권한을 감시하는 차원에서 정관 변경에 반대한 경우가 많았다”며 “상법 개정 이슈를 빼면 7∼8% 수준이던 반대 의결권이 올해 강화된 셈”이라고 말했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이지수 변호사는 “이사회나 주총의 가결률을 중시하는 기업들은 사전 합의를 이끌어낸 뒤에야 표결에 부친다”며 “그럼에도 국민연금이 10건 중 1건 이상에 대해 반대했다는 것은 시사점이 크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은 특히 그룹 회장이 계열사 임직원을 과도하게 겸임하려 하는 경우, 고위 공직자 출신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려는 경우 가차 없이 반대표를 던졌다. 애플 등 해외 법인에 대해서도 소신 있는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다.
재계는 국민연금의 반대 의견이 실제 부결로 이어지는 주총 안건이 드물어 실효성이 없다고 비판한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지침 자체도 모호한 부분이 많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시민사회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이 변호사는 “국민연금의 반대 의견이 표출되면 무리한 안건 자체가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며 “기업의 생각을 깊게 들여다본다는 사실만큼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