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채 서울대 의대 교수 “죽음,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문… 사전준비 치밀하게 해야”

입력 2013-12-25 01:30


서울시가 시민들을 위해 마련한 시민대학 강좌 주제로 ‘죽음’이 올랐다. 지난달 7일부터 12일까지 매주 목요일 ‘죽음이란 무엇인가?’ 강의가 이어졌다. 그런데 그 강의를 들은 사람들은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강의였다고 입을 모았다. 한해를 아퀴짓는 요즘 삶의 마무리인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시민대학에서 2회에 걸쳐 영화 장면을 통해 죽음의 의미를 소개했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내과학교실 정현채(58) 교수를 지난 19일 서울 동숭동 서울대학교 병원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죽음을 터부시합니다. 죽음에 대해 무관심하고 부정하고 외면하며 혐오하지요.”

그게 당연한 감정 아닐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정 교수는 여행을 떠나기 전을 생각해보라고 했다. 대부분 집안을 정돈하고, 다른 가족을 위해 이것저것 챙겨 놓고, 자신이 집을 비운 사이 필요한 사항들을 메모로 남겨 놓지 않느냐는 것.

“하물며 장거리 여행이라고 할 수 있는 죽음으로의 여행을 위한 사전준비는 치밀하고 꼼꼼히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 교수는 몇 해 전 영정사진도 찍었고, 유언장과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하지 말라’는 사전의료의향서도 작성해놓았다. 그리고 그동안 해 온 강의자료 등 연구도 틈틈이 정리해 교내 의학박물관으로 보내고 있다. 정 교수는 위 점막에 붙어사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연구에 관한 권위자다.

“길모퉁이를 돌아서면 죽음이 있다고 생각하니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삽니다.”

정 교수는 진료도 더욱 진지하게 하고, 부부싸움을 해도 바로 화해한다며 하하하 웃었다.

그가 죽음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0여 년 전. 40대 중반에 ‘죽으면 어떻게 되나’ 궁금해지면서 불안과 공포를 느끼게 된 그는 아내에게 속내를 털어놨다. 그의 아내는 미국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사후의 생’이란 책을 사다 주더란다. 그 책에는 급성질병이나 사고로 사망 판정을 받았다가 심폐소생술을 받고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 전하는 근사체험(Near-Death Experience)의 사례가 실려 있었다. 그들은 심장이 멎은 뒤 환한 빛을 봤고, 세상을 떠난 가족 친지를 만났다고 얘기했다. 정 교수는 이후 저명 의학 저널 ‘랜싯(Lancet)’ 등에 소개된 근사체험에 관한 논문 등을 찾아 본격적으로 죽음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했다.

“죽음은 사방이 꽉 막혀 있는 벽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문이더군요. 그렇게 생각하니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정 교수는 죽음으로써 끝나는 게 아니라면 자살하는 이들이 크게 줄 것이며, 말기암 환자 등 죽음을 앞둔 이들도 존재가 소멸한다는 생각에서 오는 불안과 공포가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바로 그가 죽음 교육에 발 벗고 나서게 된 이유다. 정 교수는 시민청 강좌 외에도 지난 3월 13일부터 11월 13일까지 9회에 걸쳐 서울 옥인동 북성재(출판사)에서 ‘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가?’를 주제로 강의했다. 강사료도 받지 않은 채. 얼마 전에는 부모를 여읜 여중생 3명을 위해서 기꺼이 시간을 내기도 했다. 정 교수는 죽음 교육 수강생 중 ‘더 열심히 살기로 했다’거나 ‘자살을 생각했었는데 강의를 듣고 마음을 바꿨다’는 후기를 보내오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일본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1년에 12시간씩 죽음 교육을 한 결과 왕따, 폭력, 자살 등이 크게 줄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학교의 왕따와 폭력은 이미 사회문제로 떠오를 만큼 심각하다. 자살률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1위다. 정 교수는 “국내의 초·중·고교에도 빨리 죽음 교육이 도입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죽음 교육은 이를수록 좋습니다. 얼마 전 후배가 일곱 살 난 딸이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 혼내줬다고 하던데 그러면 안 됩니다.”

정 교수는 주변에 친지나 집에서 키우던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 죽음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이끌되 정공법을 선택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착한 사람이어서 하나님이 먼저 데려갔다’는 말은 아이들에게 오래 사는 사람은 나쁜 사람인가 하는 혼란을 안겨준다. 또 ‘멀리 여행을 떠났다’고 하면 자신한테 한마디도 안 하고 떠났다는 점에서 배신감을 느낀다.

“죽었기 때문에 다시 볼 수 없다고 직선적으로 얘기해주는 게 좋습니다.”

정 교수는 한 해를 마무리 짓는 이번 주말 가족이 함께 죽음을 다룬 영화(표 참조)를 보면서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새해 더 열심히 살 각오를 다져보라고 권했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