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자동차 연비표시 글로벌 기준에 맞춰라

입력 2013-12-25 01:28

현대·기아차가 미국에서 진행 중인 ‘연비과장’ 집단소송에서 소비자들에게 3억9500만 달러(약 4191억원)를 지급하기로 합의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해 11월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미국에서 판매된 현대·기아차의 2011∼2013년형 13개 차종의 연비가 실제보다 과장됐다며 연비를 하향 조정하라고 권고했다. 이에 미국 소비자들은 현대차가 소비자들을 호도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현대·기아차는 1976년 에콰도르에 포니 자동차 5대를 수출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은 세계 5위의 자동차 회사로 도약했다. 1980년대 이후 미국 시장에서 싼 가격과 ‘10년 10만 마일 무상수리 프로그램’으로 외형을 키워 왔다면 이제는 정말 품질과 신뢰의 기업 이미지를 쌓아가야 한다. 세계 1위를 달리던 일본 도요타자동차가 2009년 대규모 리콜사태로 추락한 것이 남의 일이 아니다.

미국과 한국의 연비표시 기준이 달라 국내 소비자들이 역차별당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서울중앙지법은 얼마 전 국내 소비자 2명이 연비표시가 과장됐다며 현대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법원은 현대차가 ‘실제 연비는 표시 연비와 차이가 있다’는 문구를 설명했고 다른 회사들도 연비를 과장해서 표시하기 때문에 문제가 아니라고 봤다.

2008년 이후 국산차의 67%가 실제 연비보다 부풀려졌다는 국감자료가 말해주듯 연비과장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미국은 공인연비 오차허용 범위를 3%로 하지만 우리나라는 5%로 느슨하다 보니 연비과장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미국에서의 현대차 연비과장 사건을 계기로 자동차 연비관리제도를 개선해 올 하반기부터 시행하겠다고 했지만 1년째 관련 법규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연비를 부풀린 데 대한 과태료 500만원도 너무 적다. 자동차 연비 측정방식을 글로벌 수준에 맞게 확 뜯어고치고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 업계에 대한 과보호가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하는 데 오히려 독(毒)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